[양평 사람 최승선 012] 좋은 사람이 되는 기분, 드라이브 테라피
초등학교 4학년 때쯤, 교실에서 답변을 작성하던 갱지 설문조사지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스쿨버스 수요조사였다. 현재 등하교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문항에 학원차라는 답변을 체크했다. 학원을 다니는 이유를 묻는 문항에는 등하교를 체크했다. 스쿨버스가 생기고 한동안 학원을 안 다니기도 했다.
그 탓에 30살이 된 지금도 같은 중학교를 다닌,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언니오빠들의 집을 알고 있다. 우리 면에는 학원이 하나뿐이어서, 일종의 방과후학교처럼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학교 끝나고 같은 학원을 갔다. 선배들이라고, 후배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학원차는 두 대였고, 덕분이 이 동네 저 동네 골목골목 마당마당을 다녔다.
다양한 차를 타며 자랐다. 가족들 차, 학원 차, 학교 선생님 차, 교회 차, 친구네 부모님 차, 마을 어른 차, 길 가다 만난 모르는 사람의 차, 교수님 차, 선배 차, 후배 차, 친구 차. 의지해야 하는 사람은 작아진다는 것을 그렇게 겪었다. 부탁해야 하는 사람은 작아진다. 태워주면 땡큐, 안 태워줘도 노상관- 의 태도를 지켜야 사람의 '존엄'도 지켜지는 것 같았다.
눈이 많이 오면 깜깜하고 추운 길을 가야 하는 나를 걱정해 주는 어른들과 알아서 가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분주해서 데려다 주기 힘들 때, 지금은 어렵다고 말해주는 어른들과 귀찮게 하지 말라는 어른들이 있었다. 나를 누군가는 태워줘야 하는 상황일 때 자기는 아니길 바라는 게 보이던 어른들과 선뜻 어디로 가야 하냐 물어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어차피 태워줄 거, 기분 좋게 태워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던 어린이는 '기분 좋게 데려다주는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운전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데려다주는 일이, 데리러 가는 일이 얼마나 마음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인지 아는 어른이 되었다. 정차가 가능한 곳을 찾고, 이동 시간을 역산하여 출발 시간을 계산하고, 옷을 챙겨 입고, 차로 가는 길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아버렸다.
그 귀찮음이 목소리에 묻어날 때, 귀찮음이 짜증이 될 때, 동승자에게 바라는 게 생길 때 조수석에서 눈치 보던 어린이를 떠올려야 한다. 태워다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가랑비 내리던 날, 차도로 1시간 30분 동안 집에 걸어갔던 어린이를 떠올려야 한다. 역까지 데리러 와달라 하다가 왜 버스 막차 시간에 오지 않았냐며 잔소리를 듣고 짜증이 나서 택시를 타고 가던 대학생을 떠올려야 한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다음날 새벽이든, 아침이든 데려다줘야 한다. 그때, 아무리 번거롭고 귀찮은 와중에 상대방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선 뇌에 힘을 잔뜩 줘야 한다. 고작 차키를 가졌단 이유로, 내가 은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애써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 상처가 되었던 드라이버들을 용서하고, 위로가 되었던 드라이버들을 떠올려야 한다.
그래서 데려다주는 길, 데리러 가는 길은 나에게 일종의 '드라이브 테라피'다. 내가 남들에게 기대해야만 했던 호의를 돌려줄 수 있는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마음을 들키지 않을수록 좋다. 나만의 경험이 나에게 테라피가 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이 일이 과거의 나에게 위로가 된다. 눈치 보던 어린이에게, 이제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왔다고 위로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