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11] 매달 2회 집들이를 하는 여성의 이야기
양평으로 이사 온 지 이제 약 4달. 20여 명의 사람들이 놀러 왔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을 힘겹게 올라온 사람들은 문을 열자 모두 감탄사를 내뱉는다. “집이 왜 이렇게 좋아?!”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기 얼만지 물어봐도 돼?” 전세 1억이 안 된다는 대답에 또다시 평형을 조심스레 묻는다.
양평을 떠나 처음 성남에 살 때, 나는 반지하의 방에서 살았다. 해가 들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내 삶의 의지를 꺾는지, 햇빛으로 나갈 때마다 체감했다. 일정이 있어 나가면 낮이 너무 환해서 지금까지 나는 어떤 세상을 살았는지, 어떤 시간을 살았는지 억울해졌다. 옷과 책과 모든 집이 분리되지 않는 곳에 살고 있자니, 다음엔 반드시 투룸에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첫 번째 독립한 집은 12평의 투룸이었다. 24살에 12평의 ‘집’을 얻었다니 성공한 기분이었다. 놀러 오는 친구들마다 “투룸이야?” 하고 놀랐으니까. 퀸 사이즈의 침대를 두고도 테이블을 두고도 요가매트까지 깔 수 있는 안방과 책과 옷을 모두 둘 수 있는 작은 방, 그리고 넓은 베란다가 있는 집이었다. 맞바람이 드는 큰 창이 있었고, 밖이 밝으면 방도 밝아지는 집이었다.
그만하면 충분할 줄 알았다. 평생을 그만한 집에서 살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신혼집으로 딱 좋은 집을 꾸준히 들어온 탓에 혼자라면 과분한 집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나는 소파가 필요했다. 소파가 없으니 앉아서 해야 할 모든 활동을 누워서 하고 있었다. 누워서 책을 읽고, 누워서 TV를 보고, 누워서 공부를 했고, 누워서 핸드폰을 했다. 다음 집은 반드시 소파를 놓을 수 있는 거실이 있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고 있다. 서울에 살다가 고향이 부산으로 돌아간 분과 귀향에 대한 소감을 나누게 됐다. 그분은 혼자 서울에 살다가 부산에서 가족들과 살게 되니 정신 건강이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살지만, 나 역시 더 평화로워졌다. 그래서 대답했다. “저는 집이 넓어진 게 한몫하더라고요. 거실이 생기니까 평화로워졌어요.” 그분이 답했다. “맞아요! 집에 공간이 다양하니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게 엄청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이사 온 후, 청소를 할 때면 가끔씩 그만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청소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청소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인데, 그게 ‘그만 걷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될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와, 집에서 사람이 걷다가 질리기도 하는구나. 당연히 집에서 3천 보도 걷지 않는다. 이 쾌감은 곧 씁쓸함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누구나 쾌적한 일상을 살 수 없다니. 결국 ‘한강을 메워야’로 생각을 마무리하고, 다시 청소를 한다.
서울 밖에서도 하고 싶은 일로, 잘할 수 있는 일로 ‘인정’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가 이름 아는 기업이 없는 지역이라도(양평 이야기다.) 좋아하는 일자리, 복지 좋은 일자리, 연봉 높은 일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을 택할 때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친구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부동산 꿀팁 : 양평이라고 다 이 가격은 아니다. 역 근처는 원룸이 전세 1억이 남기도하고, 월세 70만 원씩 받기도 한다. 인천도 비역세권은 저렴하고 넓었다. 우리 집도 역까지 차로 7분 정도의 거리라서 가격이 높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