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천은 트럭, 양평은 탱크

[양평 사람 최승선 010] 동네의 풍경

by 최승선

인천 부평에서 첫 독립을 했다. 그때 다니던 회사가 7호선이어서,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 100% 대출이 되는 매물을 찾아 선택한 집이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수도권 동부에 있던 나에게는 확실히 독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은 어쩐지 정이 안 가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인천도 누군가의 사랑받는 도시였다. 나는 누군가의 애정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이다. 저게 좋다고? 왜? 나도 좋아하고 싶어! 그래서 여러 시도를 했다. 인천에서 친구를 사귀기 위해 월 5만 원을 내고, 매주 인천 사람들과 인천의 곳곳에서 노는 프로그램을 4개월간 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는 인천의 산과 섬을 주제로 뉴스레터를 쓰며 짱친베프가 되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뉴스레터를 함께 쓰는 친구들은 인천 토박이와 전주 출신 인천 직장인 두 명이다. 그들과 경인고속도로를 탈 때였나, 토박이 친구가 말했다. "인천엔 트럭이 많다 하더라고요. 저는 몰랐는데, 외지인 친구들이 인천은 트럭이 많아서 운전할 때 무섭다 하는 거 보고 알았어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물류가 모이는 곳이라 그렇게 트럭이 많았구나. 자연스레 양평을 떠올렸다. '탱크'가 떠올랐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군부대가 통합, 이전, 축소되어 비교적 덜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탱크 대열을 만나 지각할까 조마조마하던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운전하던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일에 짜증 섞인 탄식으로 핸들 위에 팔을 털썩 내려놓곤 했다. 가끔은 포클레인이, 트랙터가, 경운기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한 대는 추월할 수 있으니까. 탱크 대열은 말 그대로 대열이어서 여정을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우리 집 위치를 설명할 땐, #### 부대 앞에서 내려서 탄약고 따라 들어와 주세요-라고 말했다. 탄약고에서 보초 서던 군인들과 놀다가, 집에서 라면을 가져다줬던 일도 있다. 사촌들이 놀러 오면 우리 집 오는 길의 부대 앞 탱크 전시(?)를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와!!! 탱크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몹시 의아했던 감정이 아직 기억난다. '저게 이렇게 요란할 일인가..? 그래.. 탱크가 거기 있어. 우리 앞엔 차들이 있고.'


로컬 브랜딩을 공부하고, 로컬 기획을 하다 보면 지역을 상상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고, 없고가 얼마나 큰 자원인지 체감한다. 세부 이미지가 전체 이미지 대비 몇 퍼센트를 차지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제도 포 사격 소리에 깜짝 놀랐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려서 새벽에 깨기도 했다. '군부대 접경 지역'으로서의 양평은 전체 양평의 얼마가 될까? 외부인들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추신 :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뒤편 도로에서 탱크 대열이 지나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양평도 시골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