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32] 매일 바비큐파티인 거야~
태어났을 때부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 속에서 우리 집(본가)은 내내 화목 보일러였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삼촌이 주기적으로 뒷마당에 나가 장작을 패고, 지푸라기를 넣고, 나무를 태웠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자주 따라나갔다. 내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눈 맵다고 울며 옆에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하지 않았나 싶다.
나무보일러가 있는 집에서 크면, 집의 모든 온기에서 사람의 봉사를 감각할 수 있다. 나무 보일러가 있는 집에선 통잠을 잘 수 없다. 자기 직전에 보일러 상황을 점검하고, 새벽에 한 번은 또 나가봐야 한다. 다행히 우리 집에선 삼촌이 새벽 1시 전후로 주무시고, 할아버지가 새벽 3시 전후로 기상하시므로 타이밍이 좀 맞는 편이지만.
추운 날씨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인데, 나무를 떼야하는 사람이라고 안 그럴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하였으니, 불 봐주는 정도는 얼마든 대신해줄 수 있는데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 설거지의 능력치는 20년 전에 갖추었으나 여전히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듯, 능력과는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대신 주문을 한다.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자를 구워 먹고 싶다!” 주문을 넣는다. 삼촌에게 포일이 어디 있는지 묻고, 집에 감자가 있는지 묻고, 삼촌은 몇 개를 먹을 건지 묻고, 감자는 얼마나 구워야 하나~ 혼잣말로 또 묻고, 함께 감자를 포일에 싸고, 함께 감자를 넣으러 간다.
더 번거롭게 만들었지만, 애정이다. 감자에 대한 나의 애정(추후 설명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 대단하다.)으로 삼촌에 대한 애정을 포장한 것이다. 삼촌이 불을 넣으러 갈 때, 감자를 넣으러 따라갔다가 같이 있어주기. 감자 꺼내러 가면서 불 상황 대신 봐주기. 대부분 다 타버린 감자를 먹으며 맛있지 않냐고 우기기. 아무튼 애정이다.
그렇게 한 번 보일러 앞에 다녀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 냄새가 진동한다. 흔들리는 머릿결 사이로 탄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보일러 앞에 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도 탄 냄새가 밴 삼촌의 외투 덕에 배지만 보일러 앞에서 ‘직화‘ 후엔 냄새가 다르다. 일상이 MT고, 바비큐 파티인 느낌. 오히려 좋다.
집이 가까워졌으므로, 신나게 뒹굴거리다 집에 오면 ’ 내가 집(본가)에 다녀왔구나 ‘라는 게 확 체감된다. 프루스트 효과랄까. 그 탄 냄새로 본가의 온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도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진 않지만, 누구도 나를 춥게 두지 않는. 물론 빠르게 냄새를 제거하고 자기 위해 곧장 샤워하러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