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31] 우리 집 마당엔 언제나 장작이 쌓여있다.
노인복지관에서 잠시 일할 때, 같이 일하던 선생님께 얻은 교훈이 있다. ‘집을 구할 때 도시가스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할 것’ 도시가스 여부에 따라 겨울 공과금이 몇 배씩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그 덕에 똑 부러진 사회초년생이 되고자 부동산 어플에 들어가면 도시가스 여부를 확인했다. 도시가스가 아닌 곳은 없었지만. 그야 도시에 살았으니까.
양평에 이사 오면서도 선택지는 있었다. 같은 면 안에서도 도시가스가 되는 빌라와 안 되는 빌라가 있었고, 나는 ‘양평읍’으로 이사를 왔으므로 어쩌면 도시가스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집은 한 군데도 못 봤지만.. 그야 도시가 아니니까..
지금 집은 지역난방이지만, 다른 업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추천을 받아 들어왔다. 지난달 가스비를 보고는 깜짝 놀랐지만.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인데도 난방을 제법 아껴 틀었는데! 위층이 옥상이라 그런가, 집이 넓어져서 그런가, 도시가스가 아니라 그런가. 아무래도 모든 이유겠지만.
이런 집에서 지내다가 15분만 차를 타고 가면 후끈한 집이 기다리고 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가자마자 양말을 벗고 외투를 벗는다. 팔을 걷어올리고, 안 덥냐고 채근하다 결국 창문을 연다. 내가 가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비밀리에, 갑작스레 가니까. 화목 보일러니까 몹시 뜨거울 뿐이다.
본가는 나무를 떼서 겨울을 났다. 거짓말이다. 4계절을 났다. 40도에 육박하는 날에도 나무를 떼야했다. 도시에 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찬 물이 차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여름에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하려고 해도 영 미적지근한 물에 성이 차지 않았다. 시골의 지하수였기 때문에 여름에도 얼음장 같은 물일 수 있었구나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런 물로 샤워를 할 수 없으므로 물을 데우기 위해 나무를 떼야했다.
그래서 삼촌에게 소리를 지른다. (보통 얌전히 불러서는 닿지 않을 거리에 있으므로) “따!뜻!한! 물! 나!와!요?!!!‘ 안 나온다는 걸 안다. 삼촌이 보일러가 있는 뒷마당으로 간 적이 없으므로. 그럼 삼촌은 한국인 특유의 앓는 소리를 내며 ”조금만 기다려” 하곤 주섬주섬 밖으로 나간다. 그럼 조금 더 핸드폰을 잡고 뒹굴거리다 ”따뜻한 물 나오나 봐 봐 “ 하는 소리에 화장실로 간다.
문제는 명절이다. 설은 추우니까 미리 보일러에 나무를 넣어놓는다. 친척들이 다 모일쯤부터가 문제다. 사람이 모이고, 집이 더워진다. 모두 반팔로 갈아입어도 누군가는 땀을 흘린다. 몇 번씩 문이 열렸다 닫혀도, 창문을 열었다 닫아도 덥다. 그렇지만 나무를 뺄 순 없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하나뿐인 화장실에서 10명이 씻기도 해야 한다. 그냥, 그렇게 덥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답답할 만큼 더운 명절의 본가가 나는 좋다. 추위를 잘 타고, 더운 건 잘 참는 몸이기도 하고 그 온기가 좋기도 하고. 반팔을 입어도 지구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성이 좋기도 하다. 이 모든 게 사람이 많다는 이유라는 것도 어른이 되고 보니 나쁘지 않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모인다는 게 어떤 마음과 노력과 상황이 맞았는지 알게 되면서. 종종 본가로 피한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추신. 난방비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12평 인천에서는 도시가스 10만 원 정도 나왔고, 오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한 추정 평균 18평 집에서는 지역난방 16만 원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