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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람 집은 공공재랍니다

[양평 사람 최승선 030] 내향인들은 다를지 궁금합니다

by 최승선

이사한 지 약 5개월이 되어 간다. 그 사이 나는 약 25명의 사람들을 월 2~4회가량 집으로 초대했다. 양평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면 손님이 집에 올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최소한의 청소를 하고 나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언제든, 누구든 올 수 있다.


이런 풍경은 본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손님이 찾아와서 잠을 깬 일이 흔했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거실에서 식사를 하는 일도 낯설지 않았다. 가족들도 갑자기 지인들의 집에 갔고, 지인들도 갑자기 집에 왔다. 내 친구들의 집도, 양평에서 만난 어른들의 집도 다르지 않다.


인프라의 부족 덕이다. 밤까지 함께 있을 카페나 술집이 없고, 밤에 집에 돌아가기 번거로우므로 앗싸리 집에서 만나는 것이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들이 당일치기로 잠깐 들르기엔 이동 거리에 부담이 있는 것도 한몫한다. 물론 나는 보통 일과처럼 다녀오지만. 아무튼.


그러다 보니 혼자 사는 우리 집엔 누군지 모를 손님들을 위한 준비가 만반이다. 픽업&픽드롭 서비스 제공, 화장실 2개, 숙박 가능이라는 문구로 열심히 꼬신다. 여분의 칫솔은 기본이다. 라식 수술을 했지만 렌즈세척액이 있고(렌즈 있는 친구가 두고 갔다), 화장은 아주 가볍게 하는 편이지만 클렌징폼은 두 개를 사서 각 화장실에 하나씩 두었다. 180 후반대의 사촌동생부터 150 친구들을 위한 잠옷도 사이즈별로 구비해야 한다.


다행히, 나는 이런 삶이 아주 좋다. 다른 사람들의 소음에 예민해서, 시끄러운 장소에 가면 급격한 컨디션 저하가 있는 사람으로서 주황색의 간접등과 고요한 실내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좋다. 우리의 대화만이 유일한 콘텐츠인 상태로 밤을 샐 수 있는 제한 없음이 좋다.


혹 대화만으로 시간을 채울 수 없는 관계일 경우를 대비해 보드게임도 구비해 놨다. 약 10종의 보드게임과 6인용 테이블. 그러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꺼내본 적은 없다. 집으로의 초대에 응하는 관계라면 보통 대화만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엔 마법의 '그르륵갉' 의자가 있다면, 집엔 이케아 간접등이 모든 비밀과 '잼얘'를 꺼내게 한다.


'밤을 함께 보내야 친해진다'라는 비밀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가고, mt를 같이 간 친구들, 밤샘을 한 친구들과 보낸 '밤'은 친밀도의 질이 달라진다. 술의 도움은 일절 필요 없다. 오직 고요함과 낮은 조도만이 우리를 친밀하게 한다. 배달보다 저렴한 밀키트, 카페나 술집 대비 절반 이하의 음료값으로 우리는 더 친밀할 수 있다. 먼 곳에 산다는 핑계로 그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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