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29] 시골집에서 권력을 잡는 방법
본가는 '내 집'으로부터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증조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그 집에서 나는 20년을 살았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우리 집'은 큰 집이었으므로 명절마다 사람을 기다렸고, 맞이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동갑인 사촌오빠가 있고, 내 동생은 동갑인 사촌 형이 있다. 우리는 완벽한 '동년배'였고, 여느 집에서 그렇듯 어려서는 명절마다 '밤샘 챌린지'를 하곤 했다. 가지고 있는 건 오직 화투패와 트럼프 카드뿐이었지만, 어른들이 자기를 기다렸다가 작은 방에 모여 밤새기를 시도했던 것이 우리 유년 시절의 기억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식사이니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밤은 길다. 더 이상 밤샘은 즐거움이 아니었지만 어디로든 산책을 가고 싶었고, 괜히 간식을 사러 가고 싶었고, 노래방이나 볼링장이 가고 싶었다. 문제는 운전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는 점이었다. 저녁 시간쯤, 가장 만만한 사촌오빠에게 '일단 술 마시지 마' 얘기해 놓으면 착한 오빠는 일단 알겠다 하지만 어른들이 왜 안 마시냐 물으면 우물쭈물하다 결국 마시곤 했다. 이런.
정확히 작년 명절부터였다. 저녁을 먹고, 한참의 후식 타임을 갖고, 또 한참의 그룹별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약 9시 30분을 넘어갈 때쯤 집안 공기가 답답해지면 나갈까? 하는 충동이 든다. 그럼 또 만만한 사촌오빠에게 '나가실?' 물어보면 착한 오빠는 또 알겠다 한다. 그 소리에 귀가 밝은 18살 아래 사촌동생은 '어디 가는데?! 나도 갈래!' 하며 얼른 옷을 찾아 입는다.
갑작스러운 어린이의 외투 착용에 어른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나의 조용한 외출 계획은 기특한 '다음 세대의 단합'이 되어버린다. 본격적인 기획이 개입되어야 한다. 30살, 29살, 20살, 16살, 12살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내야 한다. 나에겐 오직 5인승 승용차 한 대뿐이므로 누구를 두고 갈지에 대한 중대한 결정도 수반된다.
'다음 세대의 단합'을 위하여 소정의 찬조금이 붙었으므로, 이왕이면 모두가 가길 원하는 어른들은 "왜 다 같이 안 가?" 묻고, 모두가 술을 마셨음을 발견하게 된다. 오직 나만이 술을 마시지 않은 오너드라이버임을. 새벽에도 갈 수 있는 볼링장과 노래방을 찾고, 어린이들을 대동한다. 어린이들에게 '권력'을 보여주며,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