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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니 거실에서 장사를 합시다

[양평 사람 최승선 028] 어린이는 용감하다

by 최승선

명절에 거실에 앉아있자면 헛웃음이 나는 기억이 있다. 12살의 추석, 부자가 되겠다며 밤을 주워와 거실에서 팔았던 기억이다. 혼자서도 아니었다. 일행 둘을 더 구했다. 거실에 밤을 깔고 작은 밤은 개당 10원, 큰 밤은 개당 20원이라며 외쳤다.


사건의 전말은 그렇다. 한 책을 선물 받았고, 크게 감명받았다. 그 책은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 자식 많은 가난한 집의 존 워너메이커가 어릴 때부터 사업성을 발휘하는 내용이다. 학교에서 행사를 하기 위해 낼 돈을 벌기 위해 개구리를 잡아서 상점에 역으로 판매를 하고, 여객선에서 귀부인의 계란바구니를 깨서 돈을 물어내야 할 상황에 남은 계란을 팔아 오히려 돈을 번 이야기 등.


내 또래의 어린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그래서 작은엄마가 '밤 주울 사람?'을 물었을 때 심심해서 따라갔다가 나도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우리 밤 주워서 팔자!' 사촌오빠와 동생을 데리고 밤을 주으러 갔다. 초등학생들의 최선으로 밤을 주웠다. 와,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을 때쯤 든든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농산물의 판매를 위해서는 전처리가 중요하다는 것쯤은 어린이도 알고 있었다. 판매를 개시하기 전, 나의 동업자들과 창고에 밤을 깔아 두고 분류를 시작했다. 작은 밤과 큰 밤을 나누고, 애매한 것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논의했다. 밤을 개당 얼마에 팔아야 할지 깊은 토론이 오갔다. 모든 결정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 장사를 시작했다.


명절 오후, 식사 후 각자의 휴식을 취하고 약간의 무료함이 있을 때쯤 조용하고 당당하게 거실로 나왔다. 주워온 밤들을 분류대로 깔아 두었다. 그리고 외쳤다. "밤 팔아요!" 어른들은 우리를 쳐다봤고, 모두 깔깔 웃으셨다. 웃기만 하고 밤을 보려 하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작은 건 10원, 큰 건 20원이에요!"라고 또 외쳤다.


밤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으나, 소파에 앉아있던 삼촌은 우리 밤을 훔쳐가기 시작했다! 잽싸게 뛰어와서 밤 한 알만 홀랑 가져가서 까먹었다. 신고하기엔 애매한 양의 도적질에 짜증 섞인 말로 "왜 훔쳐가요!!" 외쳤으나, 모두 웃을 뿐이었다. 다행히 삼촌이 가져간 밤은 벌레 먹은 밤이었다. 불행히 삼촌은 또 훔쳐갔지만.


판매보다 절도방지에 더 에너지를 쏟던 쯔음, 당시 사촌동생을 임신하고 계시던 작은엄마의 요청대로 작은 아빠가 밤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시작했다. "이거 다 해서 얼마예요?" 문제였다. 고객님의 질문에 빠르게 답변을 해야 했으나, 재고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10원짜리 밤은 몇 개인지, 20원짜리 밤은 몇 개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우물쭈물하면서도 고객님께 빠르게 답변드리기 위해 "이천 원이요!!!"라고 답했다. 빠르게 쿨거래가 성사되었고, 그 답변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가 남는 답변이 되었다. 판매자가 총 3명인데, 어떻게 이천 원을. 천 원만 더 부르지! 그러면 천 원씩 나눠 가질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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