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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면허 반납하세요!

[양평 사람 최승선 027] 그 말의 기억에서 죄책감을 덜어내는 법

by 최승선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였다. 나의 할아버지는 나의 탄생과 함께 당시 노인 기준인 60살이 되기 전에, 노인의 호칭인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는 나의 할아버지인 내내 운전을 하셨다. 그것도 자주, 멀리, 잘.


할아버지는 종종 1박 2일 일정으로 거제도도 다녀오시곤 했다. 거제도가 경상도 남쪽 끝에 있는 동네란 걸 알아도, 그렇게 멀다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할아버지 탓이다. 최근에야 편도 5시간 운전이 운전자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 알아버린 나는 이제야 할아버지가 얼마나 야간 장거리 운전을 즐겨하시던 사람인지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았고,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보다 더 자주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특히 대학교 4학년 때는 겨울이면 춥다고, 여름이면 덥다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30분이 더 걸리지만 차로 20분이면 가는 거리였으므로 '개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왕복 40분이라는 것도 지금에야 알았다.


4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나는 할아버지가 가던 노인복지관에서 두 달간 근무하게 되었다. 덕분에 할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을 같이 할 수 있었는데, 그때였다. 도로에 커다란 검은 비닐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고, 조수석의 의무대로 조용히 나 혼자 놀라고 나니 할아버지는 5초 후에 크게 놀라셨다. 별 일이 아니었으니 다행이었지만, 그 '지연된 5초'는 나의 큰 공포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같이 출근하는 걸 알고 계신 복지관 선생님들 중, 봉사자 선생님이셨던 한 분은 할아버지 면허 반납시키라고 종용하셨다. 노인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고 사례들을 늘어놓으시며 무서워하셨다. '지연된 5초'를 겪은 나로서는 그 이야기의 심각성이 오롯이 와닿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빠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졸업 후, 성남에서 아빠와 살게 된 나는 심심하면 한 번씩 '할아버지는 면허 반납 언제 하신대?' 물었다. 삼촌에게 '할아버지 면허 반납하시면 월 10만 원씩 드린다고 말 좀 해봐요' 건넸다. 할아버지는 '삼촌 담배 끊으면 면허 반납 하겠다.' 응수하셨고, 삼촌은 '그럼 운전하셔라' 답했다.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면서도 넌지시 여쭤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차가 없으면 기동력이 떨어지므로 안 된다고 큰소리치셨다.


그리고 몇 달 뒤, 양평 집 마당에 차 한 대가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면허를 반납하셨다. 내가 10만 원을 드릴 수 없게 되었고, 삼촌이 담배를 끊을 시도도 안 했지만 할아버지는 면허를 반납하셨다. 어떤 사유였는지는 듣지 못했다. 어찌 됐든 다행이라 생각했다. 노인 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위험하니까.


그리고 몇 년째, 할아버지의 일상을 본다. 차로 20분이면 가던 거리였는데 농기구를 짊어지고 10분을 걷고, 10분 버스를 타고, 30분을 기다려 환승을 하고, 또 10분 버스를 타고, 10분을 걷는 그런 일상을 듣는다. 이따금 시간이 맞아 태워다 드리면 연신 '고맙다. 덕분에 편하게 왔다.'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차가 없어도 할아버지는 80대 후반이라곤 믿을 수 없게 멀리서 농사를 짓고, 복지관도 가시고, 경동시장도 가신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차가 있던 할아버지의 삶을 안다. 할아버지는 갈 수 있는 곳을 언제든 가실 수 있는, 장거리 운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할아버지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였지만, 운전을 잘하는 할아버지였다는 걸 안다.


조금만 더 늦게 반납했으면 어떤 큰 사고가 났을지 예상할 수도 없다. 아마, 몇 년은 더 빨리 반납했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선택한 양평에서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할아버지가 어떻게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양평군에서 노인 버스 요금을 무상으로 지원한다면 할아버지는 가고 싶은 곳에 계속 갈 수 있을까? 그러면 할아버지에게 면허 반납하라고 닦달하던 내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질까?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여행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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