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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토박이가 사랑하는 로컬 카페 추천

[양평 사람 최승선 026] 시와 낭만을 좋아하시나요?

by 최승선

독립을 한 후, 나는 혼자 카페 가는 일이 줄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만의 공간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다른 곳을 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양평으로 이사 온 후에는 더욱 그렇게 됐다. 6인용 테이블과 통창, 좋아하는 차(茶, tea)가 있는 집을 두고 나가서 최소 5천 원 이상의 돈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 더군다나 어딜 가더라도 차를 끌고 나가야 하는 동네에서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혼자 카페를 간다고 하면 단 한 곳의 카페를 간다. 혼자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서는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결연하게 다짐한다. '내일은 꼭 가야지.' 그럼에도 이사 후 혼자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차 없이는 갈 수 없고, 주차요금은 내기 싫으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만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시간을 늘 놓쳐버린다. 그래서 친구들이 양평에 오면,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꼭 "그 카페"로 간다.


그 카페는 2016년에 처음 갔다. 통창과 발이 닿지 않는 높은 의자를 좋아하는 나는 그것만으로 합격이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서 내 입맛에 꼭 맞는, 다른 곳에서 잘 팔지 않는 애플망고에이드를 판다는 점도, 시험기간이면 1년에 1~2번씩 마시는 커피로 사장님의 추천으로 마신 '예가체프'가 너무 맛있는 커피라는 걸 알게 됐다는 점은 합격에 합격이었다.


양평 관광을 온 사람들에게는 선뜻 권하기엔 너무 로컬 카페라 조심스럽지만, 여행을 온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이 카페에는 낭만이 있다. 한 번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자리로 오셨다. 현금 2,500원과 함께.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커피가 반값이라며. 주문할 땐 비가 안 왔는데, 마시는 동안 비가 온다고! 카드로 결제했는데 현금으로 환급해 주셨다. 최근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여름들을 지나 지금은 눈 오는 날만 반값이지만 단골로서는 몹시 반갑다. 무엇보다 자리를 오래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니까.


2017년 6월 7일. 보다시피 소나기였고, 곧 그쳤다. 거절하는 데 실패했다.


카페의 낭만의 완성은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1990년 등단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시를 쓰는, 정기휴무일 없이 매일 12시간 카페의 문을 여시는 몹시 성실한 '어른'이다. 서비스업 특유의 '솔'톤으로 맞아주시는 일은 없다. 처음엔 어떻게 맞아주셨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웰컴! 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약간 느리게 눈 맞춤을 한 후 '오셨어요?' 하신다. 8년째 애플망고에이드를 시키는 꿋꿋한 손님에게 '안 질려요?' 정도의 말을 덧붙인다.


나는 보통 점심 먹고 카페에 가서 저녁 먹을 때가 나오곤 한다. 이게 민폐라고 배웠으니, 케이크를 더 시키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는 모르겠다. 음료 한 잔을 다 마실 때쯤이면, 차 한 사발을 가져다주시는 게 더 있어도 된다는 신호인지 얼른 나가라는 신호인지. 아직도 의중을 모른다. 하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때마다 다른 차를 주신다. 나를 특별 대접해 주시는 건가 했는데, 다들 그렇게 받는 것 같다. 차를 주실 때도 별말씀이 없다. '뜨거워요' 정도? 무슨 차냐고 물어야 겨우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사장님은 시집이 나오면 한 권 가져가라 하시고, 간식도 주시고, 차도 주신다. 오른쪽 사진의 거대한 것이 '차', 서비스다.


사장님이 만들어준 습관도 있다. 손님은 나밖에 없던 카페에서(대체로 그랬다.) 갑자기 말을 거셨다. 내심 반가운 마음에 들었던 말은 "양평 사람들은 2층을 잘 안 보나 봐요"였다. 1층에 좁은 입구,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있는 카페라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건물이 높지 않은 양평이니까, 새로운 곳이 생기지 않는 이상 2층은 보지 않았다. 우직하고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던 그 카페가 검색 전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다.


그날부터 2층, 3층, 4층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양평 시내는 상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낯선 동네에서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공간은 내고 싶으나 높은 월세는 부담인 각종 협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연날리기 협회 같은 독특한 곳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2층을 잘 안 보나 봐요.' 나는 2층을 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70366


그 카페는 바로 이 카페다. 양평의 조르쥬상드. 양평장로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면 가깝다. 약간의 주차비는 발생하지만, 모두 장학금으로 사용되니 기분 좋게 낼 수 있다. 월~토 6시 이후, 일요일에는 양평전통시장 주차장에 차를 대면 무료다. 장날엔 댈 수 없지만.. 양평군청은 월~금 6시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에 무료! 조금 거리가 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양평장로교회 주차장을 권한다.


내가 아껴왔던 가게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섭섭함을 더 알고 싶지 않다. 오랜 시간 카페에서 머물다 갈 때가 되면, 문에서 가장 먼 카운터에서부터 조용히 걸어나와 문을 열고 배웅해주는 사장님을 오래 보고 싶다. 사람들이 2층 위의 사람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양평은 이런 카페가 있는 곳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양평을 선택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곳이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양평의 카페를 추천한다. 낭만 있는 자여, 조르쥬상드로 오시길!


페이스북에서 찾아온 첫 방문 일기. 2016년 12월 11일, 아이폰 5s로 찍고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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