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에 귀촌할 결심

[양평 사람 최승선 003] 서울이 싫어서, 한국은 좋아서

by 최승선
0103 글.png 2020년 블로그에 썼던 글. 당시 만 24세였다.

남들은 다 견디면서 사는 걸 유독 못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은 다 안 괜찮다 하는 걸 괜찮다 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의 이야기다. 나의 경우, 꽉 막힌 도로와 꽉 끼는 지하철은 못 견디는 사람이었고 구직난의 불안은 괜찮은 사람이다. 지하철 타고 2시간 가는 건 괜찮아도 사람들에게 치이는 곳에서 30분 있는 건 안 괜찮은 사람이다.


양평이 좋아진 건 도시에서의 삶이 일상이 된 후였다. 버스를 타고 내렸더니 양평에선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보인다는 걸 깨달았을 때. 토요일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깼을 때, 도시에선 들어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9시 막차 타고 집 가는 길, 밤하늘 별을 보느라 걸음이 느려졌을 때. 사실은 그동안 살아온 내 방 창문으로도 별이 보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노을빛이 세상에 번질 때, 도시에선 빌딩만 노을이 번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창 밖으로 나무가 보여야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도시에서 산다는 건 이 모든 걸 휴가 때만, 여행을 가야만 누릴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겐 못 살겠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그렇게 지내고 있다지만, 휴가 때 누리고 은퇴 후에 누리는 게 자연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았다. 하루빨리 마음 편안한 곳에서 살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렇게 살고 있던 인천 아파트 재계약을 안 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양평의 부동산에 연락처를 돌리기 시작했다.


20살 때였나, 중학교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한 5년 정도 회사 다니다 돈 모으고 사회적 기업 창업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는데 선생님은 "5년... 버틸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하셨다. 선생님이 제자에게 저런 말, 그러니까 꿈을 짓밟는 말을 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그 말이 나를 꿰뚫고 있음을 반박할 수 없어 깔깔 웃었던 기억이다.


견딜 수 없는 걸 견딜 수 있는 시간은 내가 생각했을 때 5년쯤 될 것 같았다. 원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방법을 마련할 때 필요한 시간도 5년쯤 될 것 같았다. 2019년, 졸업과 함께 양평을 떠났던 나는 2024년에 양평으로 돌아왔다. 5년이었다. 제법 메타인지가 좋았네, 과거의 나. 호호


24년 9월, 대학 졸업과 함께 떠났던 양평에 다시 돌아왔다. 직장은 그만뒀고, 집은 넓어졌다. 대학원 전공을 '로컬 디자인'으로 정한 덕에 과감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 28세의 귀촌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되었다. "어때?" 묻는 말에 여러 생각을 압축해 "좋아"라고 답하지만, 압축 해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으로 [양평 사람 최승선]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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