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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때문에 이사 가고 싶지 않았다.

[양평 사람 최승선 004] 닥전. 살고 싶은 곳에서 일하기 !!!

by 최승선

회사를 기준으로 사는 곳을 정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는 언제든 그만 다니게 될 수 있는 곳인데, 그런 회사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정하기 시작했다.


살고 싶은 집. 창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날씨에 놀라지 않아도 되는, 창 밖으로 하늘이 보이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계단은 없어도 괜찮지만 거실은 있었으면 좋겠다. 투룸이면 될 줄 알았는데, 거실이 있어야 집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음은 지역. 서울의 높은 인구 밀집도가 싫었으므로, 인구 밀집도가 낮은 곳이 좋겠다. 지하철을 앉아서 갈 수 있고, 주차장같이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야 좋겠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니 서울 접근성이 좋은 곳이면 좋겠다.


무엇보다 사람. "사람이 먼저다" 참 잘 뽑은 캐치프레이즈다. 결혼 생각이 없는 나는 '좋은 이웃'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노후 대비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할 이웃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두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이사를 가면 그런 좋은 이웃들을 만나기 좋은 곳에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좋은 이웃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한 양평에서, 일단 살아보기로 했다.


양평의 풍경이 좋았다면 단양도 좋다. 서울과의 접근성이라면 춘천도 좋다. 인구 밀집도야 시 단위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낮을 것이다. 아마, 좋은 어른도 많은 지역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평에선 이미 좋은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더 많은 좋은 어른들을 상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15분 거리의 가족들을 보러 가는 빈도가 높아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양평에 향수가 있어 매주 가던 때에 비해 한참 띄엄띄엄, 짧게 간다. 학교를 모두 나온 곳이라고 친구들이 많지도 않다. 대부분 떠났고, 나 역시 떠났었으므로 편하게 만나는 친구는 한 명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필요한 환경의 기준을 세워 선택한 곳에서 내가 매일 자고 일어난다는 사실이 주는 행복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주기 위해 내가 한 선택이 매일매일 고맙다. 5년쯤 지나 보면 마음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길지 않다면, 그렇지 않을수록 좋아할 때 좋아하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 그리 길지 않으니까.


24년 9월, 대학 졸업과 함께 떠났던 양평에 다시 돌아왔다. 직장은 그만뒀고, 집은 넓어졌다. 대학원 전공을 '로컬 디자인'으로 정한 덕에 과감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 28세의 귀촌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되었다. "어때?" 묻는 말에 여러 생각을 압축해 "좋아"라고 답하지만, 압축 해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으로 [양평 사람 최승선]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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