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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으로 이사 온 28살 백수의 일상

[양평 사람 최승선 005] 그냥 백수는 아니고, 대학원 다니는 백수예요

by 최승선

양평에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 선생님은 학생이냐 물었고, 아니라 답했다. 그럼 회사원이냐 물으셨고, 퇴사를 한 건지 당한 건지 모호했던 나는 우물쭈물하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우리 대화의 막을 내린 답변이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학생이냐 물었을 때, 대학원생이라 답했으면 됐다. 모두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졌다가, 도시재생으론 안 될 것 같아 '에어리어 디자인 매니지먼트'라는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다. 공간 기획이기도, 지역 기획이기도, 하드웨어 기획이기도, 소프트웨어기획이기도, 모든 것이기도, 아무것도 아니기도 한 전공의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다. 아,, 논문 써야 하네,,


과감히 직장이 없는 곳으로 이사 온 것도 전공의 역할이 컸다. 단순히 낭만 찾아왔다 해도, 이 전공과 함께 하는 한 업을 위한 선택으로 포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심이기도 하다. 나는 로컬 기획자가 되고 싶다. 로컬 기획자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로컬에서 기획을 하면 된다. 나는 '나의 로컬'을 양평으로 설정했고, 기획을 위한 재료와 동료를 모으기 위해 이사를 했다.


그럼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느냐! 현재 2025년 1월은 대학원 겨울방학이다. 학기 중이었다면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온라인 수업을 듣고, 틈틈이 벼락치기로 과제를 했을 테다. 토요일이면 연희동, 또는 거제나 양양, 목포나 충주, 군산이나 괴산에서 오프라인 수업을 했을 테다. 방학이니 온라인 수업도, 토요일 여행도 없다.


그래서 지금은 독서모임만 하고 있다. 지역 이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티다. 자녀 교육 때문이라면 학부모 커뮤니티, 일 때문이라면 회사 커뮤니티가 생길 테고 나 같은 백수는 따로 커뮤니티를 선택해야 하는데 내가 선택한 건 '독서모임'이었다.


이 독서모임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원하는 삶을 탐색하고, 선택할 기회를 가졌던 아이들이 졸업 후에는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아쉬웠던 학부모님들이 만든 모임이다. 교통 인프라상 아이들만 독서모임을 해도 부모님들이 차량 봉사를 해야 하니, 성인 독서모임과 청소년 독서모임을 동시에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는 13살 어린이들과 매주 2시간씩 독서모임을 한다. 그리고 매주 아이들의 학부모님들이 돌아가며 나의 식사를 챙겨주신다. 내 시간을 돈으로 환산받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일인지 모른다. 이 일이 양평에 이사 온 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가끔 친구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거 돈 받아?' 할 말을 찾다가 '아니. 일종의 교육 봉사야'라고 답한다. 그럼 잠깐의 침묵. 그리고 또 묻는다. '뿌듯해서 하는 거야?' 또 할 말을 찾다가 '아니. 자주 귀엽고, 재밌긴 한데 그래서 하는 건 아니야. 재밌는 거야 너네랑 노는 게 더 재밌지 뭐. (웃음)'라고 답한다. 친구도 답을 얻긴 어려울 거라 생각하여 질문을 멈추고, 나도 긴 버전 외엔 답변이 없어 화제를 전환한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내가 이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


24년 9월, 대학 졸업과 함께 떠났던 양평에 다시 돌아왔다. 직장은 그만뒀고, 집은 넓어졌다. 대학원 전공을 '로컬 디자인'으로 정한 덕에 과감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 28세의 귀촌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되었다. "어때?" 묻는 말에 여러 생각을 압축해 "좋아"라고 답하지만, 압축 해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으로 [양평 사람 최승선]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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