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39] 로컬 맛집의 허점
여행 온 사람에게 권하긴 머뭇거리지만, 아무튼 나는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람들에게 라면 같은 것. 한국 여행 온 사람에게 편의점 가라 하긴 그렇지만, 외국에 다녀오면 반드시 먹게 되는 그런 음식. 나는 그것이야 말로 '로컬 맛집'이라고 정의하며, 나의 로컬 맛집은 닭갈비다.
인생 첫 '회식'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교회에서 생일이라고 중고등부 회식을 하러 갔고, 그 메뉴가 닭갈비였다. 그때 메뉴를 누가 골랐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생일이면 닭갈비를 먹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한 놈만 패는 사람이다. 서브웨이에 처음 간 그때부터 지금까지 'BLT' 한 놈만 패 왔다. 맥도날드에 가면 '상하이 스파이시버거'만 먹고, 버거킹에 가면 '불고기 와퍼'만 먹는다. 롯데리아만 불고기버거와 핫크리스피버거 두 개중에 골라 먹는다.
그러니 닭갈비집을 더 찾아볼 일은 없었다. 처음 먹은 닭갈비집은 나를 충분히 만족시켰으므로 계속 가면 될 일이었다. 그 탓에 나는 내가 닭갈비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닭갈비집을 몇 번 가본 후에야 나는 '그 닭갈비'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차 없이 돌아다니지 않는 양평 사람들이 주차장도 없는 그 닭갈비집에 바글바글했다. 금요일 5시부터 웨이팅을 섰다. 누가 봐도 근처 사는 사람들이 자기네 동네에서 웨이팅을 섰다. 나 역시 웨이팅을 서며 의아해했다. '대체 왜 닭갈비 때문에 대기까지 하시는 거야들'
그 닭갈비는 감탄이 나오는 법이 없다. 그냥 닭갈비다. 다만 다른 닭갈비집이 뭔가 늘 부족했다. 양념이 너무 단순하거나, 고구마가 안 들어있거나, 찍어먹을 소스를 주지 않거나, 그 소스가 너무 초고추장/고추장/쌈장이거나, 동치미가 너무 달거나 시거나. 하여튼 꼭 하나가 부족해서 '그 닭갈비'를 찾게 했다.
'맛없는 맛집'이 존재하는 시대다. 맛집이라는 단어가 식당이라는 단어의 대체어가 된 시대에 나는 왜 그 닭갈비집을 '맛집'으로 부르지 못할까? 종종 또간집 양평편 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한다. 내가 그 닭갈비집을 맛집이라 하면 양평 사람들은 동의할 텐데, 외지 사람들이 동의할까?
그런 자신 없는 마음은 쓸데없는 남의 인정으로 달랜다. 춘천 토박이 친구가 인정해 준 집이라고, 유명 배우의 단골집이라 내가 자만추도 했다고. 분점이 4개나 되는데 홍대에서도 웨이팅 하는 집이라고. 그런데 양평본점이 제일 맛있다고. 이만하면 나름 객관적인 데이터도 갖춘 것 같은데.
맛집은 '여행의 메뉴'여야 가능한 걸까? 몇 년 전 친구들과 무계획 대구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맛집을 물어보고 거기로 가기로 했다. 또간집의 시초랄까? 그 첫 인터뷰이는 노점에서 핸드폰 케이스를 팔고 계시던 분이었다.
대구 맛집을 묻자 그는 족발집을 알려줬다. 아마도 그때 셋 모두 표정 관리를 못했나 보다. 그는 그 표정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대구까지 와서 족발 먹어야 하나 싶죠? 근데 먹어봐요. 전국 팔도에서 거기보다 맛있는 족발집은 없어요."라고 답했다. 그 확신이 좋아서 속는 셈 치고 갔는데 그냥 족발이었다.
닭갈비가 그렇다. 춘천의 많은 닭갈비 '맛집'을 가봤지만, 모두 그냥 닭갈비였다. 양평의 '그 닭갈비'집엔 있는 게 없는 닭갈비집과 '그 닭갈비'집에서 주는 걸 주는 닭갈비집으로 나뉠 뿐이었다. 이게 '그 닭갈비'가 정말 맛있는 건지, 그저 내 닭갈비의 기준이 '그 닭갈비'가 된 건지 알 순 없었다.
하지만 양평 사람에겐 자신 있게 권한다. 양평에 이보다 맛있는 닭갈비집이 있으면 제발 나한테 알려달라고. 양평 사람들은 그냥 '골목에 있는 닭갈비집'이라고 불리는 그 닭갈비집의 이름은 정통춘천닭갈비. 최근 브랜딩을 위해 신미경양평닭갈비로 상호명을 바꾼, 신미경홍대닭갈비의 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