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44] 시골 사람 특 : 사람의 출처를 밝히고 싶음
양평에서 10년 넘게 산 친구에게 '텃세를 언제 느껴?'라고 물어봤다. '원래 양평 사람이냐고 물을 때'라고 답했다. 출처를 묻는 그 질문은 출처를 답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오게 됐는지, 카페는 부모님이 차려준 건지 남편이 차려준 건지, 원래 돈이 많아서 한 건지 알아내려는 질문들로 줄줄이 이어진다.
"너도 그 질문 많이 한다?" 친구가 말했다. 그렇다. 그 질문은 나의 취미라고 할 정도로 자주 하는 질문이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호기심이 많다. 평소 쉴 때 집에서 뭐 하시나요? 제일 많이 본 영화는 뭐예요? 뭐 할 때 '잘 놀았다!'라고 느끼시나요? 쉰다고 느끼는 이유는요? 학교 다닐 때 무슨 동아리 하셨어요? 나름 평가의 질문들은 배제한다고 거르고 걸러 만든 스몰토크 질문 리스트다. "원래 양평분이세요?"는 평가가 아니라고 자신할 순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명함에 고등학교가 적혀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명함을 받아보면 알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적어놓는 경우도 있다. 내가 얼마나 이 지역에 오래 살았는지로 내가 얼마나 '진짜'인지 증명하려는 마음이다. 그 증명이 유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덜 진짜'가 되기도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토박이가 아니다. 3대 정도는 그 지역에서 살아야 토박이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짜 양평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님이 우리 동네에 처음 가보시는 경우 "양평 사람이에요?" 묻는다. 나는 양평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답을 하면 아빠 이름을 묻는다. 나름 작목반도 하고, 친구도 여기저기 많았으니까 '혹시 알까?' 하고 답을 하면 "처음 듣는데"라는 냉담한 답이 돌아온다. 가짜가 된 것이다.
그 꽁한 불쾌함을 잊지 못한다. '흥! 자기가 무슨 양평 사람 다 알아?' 중학생도 그런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 경험은 업데이트 됐다. 새로운 아저씨가 똑같은 불쾌함을 선사했다. 그렇다고 그 아저씨가 잘못을 한 건 아니니까 누구한테 말하기도 뭐 한 불쾌함이다. 양평 사람이 아니니까 차에서 내리라고 불이익을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아빠 이름을 처음 들었다 한 것뿐이니까.
"원래 양평 분이세요?"는 불쾌함을 줄 가능성이 농후한 질문이다. 그러면 하질 말아야 하는데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 그러니 빠르게 의도를 전달해야 한다. '제가 서울 밖 지역에 대한 연구를 하거든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서울 밖을 선택하는지 궁금해서요.' 학기당 700만 원이 넘는 대학원 등록금을 생각하며 그 돈이 질문의 무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궁금한 걸 묻고 싶은 억울함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토박이가 뭐라고!'
지역을 거점으로 비즈니스, 공간을 비롯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100명 이상의 로컬 크리에이터를 직간접적으로 만나보니 체감상 외지인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 이하는 아닌 것 같다. 서울 밖에선 외지인의 비율이 많아야 30%라는 걸 감안하면 외지인들이 로컬 크리에이터가 될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그들은 '고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나의 성향과 선택과 관계없이 주어진 고향을 벗어나, 나와 잘 어울리는 지역, 내가 사랑할 만한 지역을 선택해 과감하게 이동한 사람들이다. 태어난 곳에서 편안함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토박이'들과는 다르다. 토박이들이 고향을 편안하게 생각하긴 하느냐는 차치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왜 양평이었는지 듣고 싶다. 전원주택을 지을 지역은 양평 말고도 많고, 강이 흐르는 수도권은 당장 가평도, 청평도 있는데 왜 양평이었는지. 투자 가치 때문인지, 아이들 교육 때문인지, 마침 괜찮은 땅을 양평에서 발견해서인지, 직장 때문인지, 양평의 무엇이 좋아서인지. 그러나 주저한다. 말하고 싶지 않아 하시면 어쩌지.. 그러니, 내가 먼저 말하고 있어야겠다. 나는 양평의 무엇이 좋아서 양평을 선택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