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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축제 자랑 : 양평 특집

[양평 사람 최승선 050] 축제의 꽃은 초등학교 축제랍니다

by 최승선 Feb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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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누구에게나 권할 책을 고르라면 단연 <전국 축제 자랑>이다. 수도권 밖의 지역 축제들을 다녀온 에세이에는 젓가락 축제라든지, 용감하게 신년에 개최하는 지리산산청곶감축제, 이름부터 멋들어진 와일드푸드축제 같은 것들이 담겨있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쏙 빠질 수밖에 없던 양평 사람으로서는 서운했지만, 마땅히 내세울만한 축제가 떠오르진 않았다.


양평은 체감상 매 달 축제를 하는 것 같다. 3월 단월 고로쇠 축제를 시작으로 4~5월엔 개군 산수유&한우 축제,  갈산 누리봄 벚꽃축제, 용문 산나물 축제, 6월엔 밀 축제, 여름엔 워터워 페스티벌, 9월엔 부추 축제, 10월엔 김장 축제. 이 사이사이 각종 문화행사와 작은 축제들이 껴 있으니 정말 매달 축제가 열릴지 모른다.


살면서 가장 많이 간 축제는 개군 산수유&한우축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4월 첫째 주 토요일엔 학교에서 다 같이 산수유축제를 갔다. 학년별로 장기자랑을 나갈 팀을 뽑았고, 수업 시간에 따로 연습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런 기억들과 함께 사람들이 너무 많지는 않지만 나름 축제 느낌은 있어서 매년 시간 되면 찾아가는 축제다. 


그렇다면 그중 가장 좋아하는 축제는?! 양평 갈산 누리봄 벚꽃 축제다. 내가 양평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 갈산공원에 벚꽃이 가득 펴있는 그 시기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기분 좋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적당한 분주함을 좋아한다. 그래도 축제라고 인공잔디지만 파란(green) 축구장 위에 설치된 먹거리 부스와 놀이터에 설치된 플리마켓도 좋아한다. 포토존이라고 만들어놓은 인공 구조물만 빼면.. 모든 것이 좋다. 


그런데, 작년에 갈산 누리봄 벚꽃 축제를 단숨에 꺾고 최애 양평 축제로 자리매김한 축제가 생겼다. 바로 조현초등학교의 숲 속 마켓이다. 우연한 기회로, 그렇지만 혼자서는 뭔가 부끄러워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를 토요일 아침부터 깨워 조현초등학교로 향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홍보물 하나 찾기가 어려워서 '진짜 하는 게 맞나..' 의심하며 난생처음, 조현초등학교에 도착했다.


10년 전부터 폐교 위기를 이겨낸 혁신학교로 알고 있었다. 학부모와 학교와 지역 주민들이 잘 어우러지는 학교라고도 익히 들었다. 그런 소문(?) 같은 기사들이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접점이 없었는데 축제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가 터 잡은 용문산 아래, 조그만 학교도 노란 은행나무속에 있었다. 


조그만 학교의 조그만 마켓은 생각보다 조그맣지 않았다. 어린이들과 졸업생 청소년, 학부모님들과 인근 주민들이 매대 하나씩 펼쳐놓고 시끄럽지 않은 활기참으로 축제가 진행됐다. 시작부터 곤란한 일이었다. 어느 어린이가 공룡과 동물 피규어를 개당 100원에 팔고 있었다. 나는 그 피규어의 정가를 알았으므로 돈을 더 챙겨주고 싶었으나 어린이는 100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곰돌이 푸와 브라운 인형 앞의 작은 상자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개당 100원 !곰돌이 푸와 브라운 인형 앞의 작은 상자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개당 100원 !


그 공룡을 시작으로 타투스티커도 500원에, 운 좋게 몸에 맞는 셔츠도 2천 원에 한 벌 챙겼다. (초등학생들과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오는 자리였으므로, 맞는 셔츠를 찾은 건 큰 행운이었다!) 무료 방향제 만들기 체험도 홀랑 참여하여 '몇 학년이니~?' 소리도 듣고, 호호. (대학원생도 학생이니, 3학기예요-라고 답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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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최고의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전이었다. 조현초 학부모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어머님들이 분식과 김치전, 음료 등을 판매하셨다. 김치전이 단돈 3천 원이었는데, 만팔천 원짜리 김치전만큼 맛있었다. 둘이서 3장쯤 먹었던가. 내 인생 최고의 김치전.. 내년 축제 때도 팔아주면 좋겠다. 정자에 자리를 잡고 서울 친구와 축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서울의 영어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작은 학교라 그런가? 우리 애들보다 나이도 더 많은데 확실히 달라요. 순수해.'라는 소감을 남겼다. 그중 다섯쯤 되는 아이들이나 가까스로 알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괜스레 뿌듯해졌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나이에 맞게 자랄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셨을지 두고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좋은 축제를 왜 이제껏 비밀리에 해왔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비밀이 아니었던 것은 놀라웠고. 또, 알고 보니 조현초뿐 아니라 세월초에서도 세월 마을학교축제라는 이름으로 주민들과 학교가 어우러져 축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만 빼놓고! 아이도, 하물며 조카도 없는 지역 주민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온 마을의 역할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한 아이로 환해지는 기쁨은 덤이다.


있으나 마나 한, 없어져도 부녀회와 이장단만 기억할 축제도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주민들이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축제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양평뿐 아니라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로 좋아하는 축제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축제들을 맘껏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좋겠다. 전국 축제 자랑! 우리가 직접 우리의 축제를 자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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