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스쿨을 수료 후 한 동안은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제대로 된 것인지, 잘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중에 마침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쓰기 수업이었는데 강사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의 감독인 이미랑 감독님이었다. 거기서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웠다. 그 수업에서 그동안 써온 시나리오를 다듬었다.
그 수업에서 내 또래의 촬영감독을 만나 함께 의기투합하여 함께 영화를 찍기로 했다. 촬영장비도 촬영노하우도 없는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남주인공은 당연히 나였고 여주인공이 필요했다. 배우, 영화, 드라마인들의 커뮤니티에 필름메이커스에 구인 공고를 내었다. ‘몇 명 지원이나 하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올린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메일로 수많은 프로필이 쏟아졌다. 세상에 배우들이 이렇게 많구나! 며칠 동안 고르고 골라 10여 명의 후보로 추린 후 오디션을 진행했다.
청파동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진행했는데 대기실이 없어 근처 카페에 카드를 맡기고 오디션을 보러 오시는 배우님들께 차 한 잔씩 드리기로 했다. 부족한 내 영화 때문에 멀리서 오는 분들께 최소한의 대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디션이 끝나고 배역을 정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배역을 정하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장소를 섭외해야 하고 제작비를 벌어야 하고 콘티를 짜야 하고 의상을 정해야 하고 혼자서 여러 명의 일을 해야 했다.
도저히 혼자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녹음과 조명에는 촬영감독과 친분이 있는 감독들을 섭외했으나 콘티를 위한 모델이 필요했고 지나가는 행인이나 식당 손님들까지 모두 섭외해야 했었다. 다행히 친구들이 선뜻 나서 주었다. 그 외에도 드라마 제작 경험이 있는 동생이 조연출 외에도 자잘한 일을 도맡아서 해주었다.
드디어 촬영날이 되었다. 함께 하는 스태프들은 전부 다 전문가였다. 정작 중요한 감독인 나만 초짜였다. 촬영 전날에는 설렘과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촬영날을 맞이했다.
제작 비용을 아끼기 위해 단 하루 만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해서 촬영이 이어졌다. 예상 스케쥴은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으나 막상 촬영하다 보니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15시간이라는 스케쥴이 되었다. 정말 촬영현장은 예상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나는 아직도 첫 장면을 촬영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촬영 준비가 끝나자 모두가 나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레디!”라고 외쳤다. 그 순간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고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함만이 느껴졌다.
액션!
수 개월 동안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영화가 한 장면씩 만들어졌다.
영화가 완성된 후 여러 영화제에 출품했지만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상영되었다. 내 영화가 커다란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그 감동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함께 써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