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상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처음 연기 수업을 듣게 되면 방 안을 이리저리 걷게 시킨다. 숨이 찰 만큼 빠르게도 걸어보고 온몸이 뻐근할 만큼 느리게도 걸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공간을 느끼라고 한다. 사람들은 연기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연기는 액션에 대한 리액션이라고 얘기한다. 리액션을 하기 위해서 먼저 액션을 받아들여야 한다. 액션을 받아들이는 것은 느끼는 것이다. 연기는 자신의 몸으로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먼저 느껴야 한다. 그다음에는 주변을 느껴야 한다. 온도와 습도, 바람, 냄새, 빛, 소리, 맛 등 오감을 통해 느낄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추워하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추위를 먼저 느껴야 하고,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먼저 느껴야 한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독백 연기를 연습한다. 독백 연기는 없는 것을 느껴야 한다. 눈 앞에 없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하고, 따뜻한 방 안에서 추위를 느껴야 하며, 공기를 씹으면서 단맛을 느껴야 한다. 거짓이지만 사실로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평소에 느끼는 훈련을 한다. 길을 걸으면서 딱딱한 아스팔트를 느끼고,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시끄러운 차 소리와 나를 유혹하는 길거리 간식들의 냄새를 느낀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느끼는 만큼 세상을 더 다채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 스마트폰만을 보고 이어폰만을 듣는 현대인들에게 세상은 보고 듣는 두 가지 감각, 흑백의 세상일 뿐이다. 하지만 느끼는 훈련을 하다 보면 세상의 색채는 더욱 다채로워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햇볕의 따스함, 더운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혀끝에 감도는 달콤한 맛,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한겨울에 어디선가 풍기는 붕어빵의 냄새. 손바닥만한 세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세상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따뜻한 음식의 맛은 스마트폰의 작은 저장공간에 갇힌 채 잊혀진다. 연기를 하게 되면 따뜻할 때 먹는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연기는 이런 작은 순간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한다.
동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관찰해야 한다. 뮤지컬 《캣츠》에서 고양이를 연기하기 위해 배우들이 고양이를 기르며 걸음걸이와 행동을 관찰했다고 한다.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람을 관찰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매일 수많은 교재를 공짜로 접할 수 있다.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의 표정은 어떻게 변하는지, 눈썹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눈 주위가 경직되는지 떨리는지, 호흡과 말소리는 빨라지는지 느려지는지, 입이 벌어지는지 앙다물어지는지를 세세히 볼 수 있다. 그런 관찰이 쌓이면 나도 연기를 할 때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하게 된다.
연기의 가장 큰 선물은 세상을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살아가는 순간의 감각들을 확장한다. 연기는 단지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이다. 느끼고, 관찰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된다. 이렇게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연기를 넘어서도 우리의 삶은 한층 더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