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집

(에세이) 2. 카카오톡의 숨김친구

by 습작생

토요일 아침 7시 40분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전 날 분명 새벽까지 잠들지 않았는데 습관처럼 평일 기상 시간에 맞춰 생체리듬이 발동한 것이다. 서너 시간밖에 못 잔 탓에 몽롱하다.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다. 사실 불면증 때문에 밤에도 잘 못 잔다. 깨버리면 거기서 일상을 시작한다. 애써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어차피 못 잘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시간 못 자고 깨버리면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는 게 이롭다. 이불속에서 뒤적이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기 때문이다. 잠을 깨는 방법 중에 가장 기분 좋게 깨는 방법은 스마트폰 인스타 어플을 켜서 강아지나 고양이 같이 귀여운 생명체를 보는 일이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일이십 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잠은 달아난다. 어떤 날은 카카오톡에 쌓인 톡들이 먼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단체 톡방에 의미 없는 톡들. 방을 들어가자마자 숫자만 없애고 바로 나온다. 톡을 처리하고 나면 가끔씩 친구들 목록에서 의미 없는 친구들도 숨김 친구로 돌린다. 퇴사한 직원, 다른 직종으로 이직한 거래처 직원, 한 때는 친했으나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친구, 썸은 탔지만 앞으로 더 이상 연락은 없을 것 같은 사람. 한 참을 돌리다 보면 애매한 사람이 나온다.


"얘랑 요즘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지.. 한 때는 친했는 데 뭐 때문에 틀어졌더라...?"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그 사람과 왜 사이가 틀어졌는지 아무리 떠 올려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내 마음속에 불편함만 남아 있는 사람이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볼까 고민하다가도 불편한 감정이 남은 사람에게 톡을 하는 건 서로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로 마무리 짓는다.


30대 초반에 만난 한 살 터울 친한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는 내가 힘들 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고 기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던 마음 착한 누나였다. 나는 결코 그 누나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았고, 그 누나도 그랬으리라 확신한다. 누나는 작은 키에 온화한 인상만큼 마음씨도 고왔다. 지인이 가게를 차리면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 하나 사주는 사람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조금이라도 포장해서 맛을 보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간혹 자신이 베푼 것을 작게라도 돌려받으면 갓 꽃망울을 터트린 꽃처럼 활짝 웃어주는 사람이었고,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사람이 다 그렇지', '믿은 내가 병신이지'라며 자기 탓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누나와 무슨 이유로 틀어졌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2년 전 틀어진 이후로 톡은커녕 인스타도 언팔했다. 가끔 소식이라도 전달받으면 반가우련만 접점이 있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안 한지 오래라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 갈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 세상에서 친구는 의식주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통학을 같이 하는 친구, 방과 후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 담배를 같이 피우는 친구, 급식을 같이 먹는 친구 등. 여러 종류의 친구가 있었다. 물론 그들이 다 소중한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울리는 친구도 있었고 별로 친하진 않지만 필요에 의해서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도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친구는 중요했다. 같이 수업을 듣고 학식을 먹고 클럽에 가고 미팅도 하고.. 장소와 행위는 바뀌었지만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친구가 없으면 인생은 당연히 외롭고 나라는 존재도 의미가 없을 것만 같았다. 친구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면 당장은 안 보더라도 며칠 안에는 꼭 화해 했다. 친구를 등지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심하게 싸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너 나 평생 안 보려고 그러냐?"라는 말로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을 때까지 볼 사람이고 우정은 영원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5살 이른 나이에 직장에 들어갔고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친구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장독대에 숙성시킨 된장처럼 맛이 깊어질 줄 알았는데, 가위같이 점점 사이가 벌어지기만 했다. 결혼식 같은 행사가 아니면 도통 연락할 일도 없고, 가끔 안부를 묻는 게 전부다. 사는 게 고달프고 바쁘니 구태여 시간을 내서 보는 것도 일이 돼버렸다.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 쌓았던 친구에 관한 기억들은 희미한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다. 한 때는 달콤했던 친구나 우정 같은 단어들이 더 이상 낭만적인 단어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삭막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족도 잘 돌보지 못하는 데 친구는 무슨. 내 앞가림이나 잘하면 그만이지.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게 확실하다.


한 때 그 착한 누나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숨김 친구' 목록에서 언제 다시 '친구' 목록으로 돌아올지 모를 사이가 되어버렸다. 개운하지 않지만, 다시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오해를 풀고 싶은 노력은 하고 싶지 않다. 한 번 엇나간 인연은 그 관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 관계도 생물처럼 수명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냥 흘러가게 두면 다시 볼 수도 있고 영영 흘러가 못 볼 수도 있다. 어차피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인데 사람 관계는 하늘에 맞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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