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 (1)
혼자는 외롭지 않다. 사람들은 쉽게 착각한다.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롭고, 타인을 그리워 할 것이라고.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외로움이란 단어를 품고 있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외로움을 비교적 안 느끼는 편이다. 10년을 혼자 살았지만, 마지막으로 외로움을 느껴 본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아플 때 서럽지도 않다. 단지 아픈 것에 집중해서 아픔만 느낄 뿐. 나에게 서러운 감정은 일말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서른세 살. 병명도 정확히 모르는 극심한 독감에 걸렸었다.
가을볕이 절정으로 치닫는 날.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 담배를 물었다. 평소 담배를 많이 태우진 않지만, 업무에 시달릴 때면 옥상으로 올라가 한 대씩 물고 내쉬어지는 한숨을 구경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담배를 다 태우자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개운치 않았다. 침을 삼킬 때마다 편도가 부은 느낌이 들어 목감기 초기 증상 같았을 뿐 깊은 독감에 빠져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편도가 더 붇고 열이 낫다. 일교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으레 겪는 푸닥거리로 여겼다.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니 집 천장 하얀 벽지 속 연갈색 꽃무늬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고열로 정신이 혼미 해져갔다. 그날은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고 회사 지분을 20% 나 가진 팀장과 2박 3일 일정으로 경상도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미리 업체들과 미팅 약속을 다 잡았기 때문에 담당자인 내가 갑자기 빠지는 건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갈 수밖에 없다면 아프다고 말하기도 싫고 아픈 걸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출고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모하비 신형 운전석에 몸을 축 늘어트리며 앉았다. 팀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조수석에 앉아 생기 가득한 동작으로 차문을 닫았다. 팀장은 소풍을 떠나는 아이마냥 즐거워 보였다. 해운대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켤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소나기가 내리는 곳과 내리지 않는 곳이 맞닿아 있는 경계처럼 그와 나는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 2시쯤 대구에 도착했다. 달리는 내내 팀장은 창문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가 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떠오른 듯 나를 바라보며 얘기를 꺼냈고,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다시 창박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길 반복했다. 팀장이 들려주는 얘기는 보통 이런 식이다. 주말 친구들과 골프 라운딩 내기를 했는데 몇 타 차로 이겨서 얼마를 땄고 저녁으로 고급 식당에 가서 비싼 음식을 맛봤다 같은 얘기들이었다. 나는 회사 근처에 원룸 전세를 얻어 살아가는 소시민이었다. 팀장은 자취생인 내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고급 취미를 숨 쉬듯 편하게 즐길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했다. 본인의 경제적 우월함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채우고 싶은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니 얘기 한 귀로 들어와서 다른 한 귀로 다 나간다 이새끼야.." 속으로 되뇌었다.
첫 번째 업체와 미팅을 마치고 부산으로 옮겨 두 번째 업체와 미팅을 마치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업체와 미팅할 때나 운전할 때 전혀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게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깨달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해운대 해수욕장을 향해 운전하고 있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1층 테라스에 앉아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에일 맥주 두 잔을 시켰다. 팀장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성공적인 미팅, 바다 풍경, 맛있는 음식과 맥주 한 잔. 그는 더이상 어떠한 쾌락도 바라지 않는 사란처럼 보였다. 반면, 나는 자식상을 치르는 부모 눈치를 보는 사람처럼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녁 여덜시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옷 속에 파고들 때마다 몸이 찌릿찌릿 아팠다.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두 눈에서 눈 물 몇 방울이 흘렀다. 감정이 동해서 흘린 눈물은 몇 번 경험해봤으나 아파서 흘린 눈물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그 상황에서 흐르는 눈물이 당황스러워 아픔도 잠시 잊혔다. 팀장은 눈치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팀장은 전혀 내가 아픈걸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최 과장은 맛이 별로 없었나 봐 표정이 안 좋네?" 누가 봐도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팀장은 나를 아픈 사람으로 여기기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아프다는 걸 알면, 본인이 직접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차를 제법 잘 몰았다. 내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듯 경치를 즐기며 2박 3일 보내고 싶었겠지. "기대도 안 했어 이 새끼야.." 속으로만 내뱉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쓰러졌다. 내 집 천장에서 뱅글뱅글 돌던 하얀 벽지 속 연갈색 꽃무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 8시부터 쓰러져 잠이 들어 다음날 아침 8시에 일어났다.
9시에 팀장과 스타벅스에 들러 샌드위치와 따듯한 캐모마일을 마셨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는데 메뉴판에 보이지 않았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첫 번 째 미팅 업체로 향했다. 전날 푹 잔 덕분인지 기운이 좀 들었다. 평소처럼 씩씩한 모습으로 미팅을 끝냈다. 점심을 먹고 두 번째 미팅을 위해 울산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울산 시내로 접어드니 롯데백화점 위에 큰 관람차가 눈에 들어왔다. "근본도 없이 대형 관람차를 백화점 위에 짓다니" 몸이 아프니 모든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놀이동산에서나 볼법한 관람차를 왜 백화점 위에 지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지 않는다. 기이한 조형물이라는 이유로 그 관람차는 울산의 랜드마크로 불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의 세계라면 억지로 동의할 순 있다. 예술은 원래 그런 거니깐.
롯데백화점에서 추석 선물용 과일 세트를 샀다. 그 과일 주인은 대기업에 줄을 대줄 거래처 70대 임원이었다. 팀장은 백화점 마크가 붙어야 약발이 잘 먹힌다고 했다. 사회에 점점 찌들어 가던 나는 뭔가 깨달았다는 눈빛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점을 빠져나와 노인네 집으로 향했다. 팀장은 고층 아파트들이 높게 솟은 울산 시내 풍경을 바라보며 울산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제보다 몸이 좋아진 나는 연신 "그러게요"를 연발했다. 기업 임원치고는 너무 늙어버린 백발의 할아버지에게 백화점에서 사 온 과일과 골프 거리측정기를 건넸다. 해외에서 사 온 거리 측정기는 70만 원 정도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멋쩍은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노인네 표정을 보니 우리가 하려는 일이 분명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할아버지 집을 떠나 다시 울산 시내로 돌아왔다. 비즈니스호텔같이 생긴 덜 퇴폐적인 모텔을 잡은 우리는 6시까지 쉬다가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먹었다. 팀장은 분명 내 상태가 안 좋은 걸 알았기 때문에 어제처럼 맥주를 건네진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나는 다시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스타벅스에 들러 브런치를 먹고 용인으로 향했다. 팀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인 기흥역에 도착하면 모든 업무 일정은 끝난다.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 마침내 기흥역에 도착했다. 중간에 초점이 흐려져 가드레일을 박을뻔했지만, 조수석에 앉아 손과 고개를 축 늘어트리고 살짝 입을 벌린 상태로 자던 팀장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운전석에서 수인 분당선으로, 팀장은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갈아탔다. "수고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노란색 수인 분당선을 타고 정자역에 도착해 신분당선으로 갈아탔다. 강남역까지 얼마 안 남았다. 정신을 잃기엔 2박 3일 버틴 게 너무 억울하다. 강남역에서 집까지 15분. 비틀비틀 비틀비틀 내 등을 다 덮고도 남을 백팩을 메고 곧 쓰러져도 안 이상한 사람처럼 걸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건물에 도착해 4층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식은땀을 흘리며 발을 옮겼다. 집 문을 열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웠다. 오후 3시쯤 됐을까?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라 5일 동안 회사 갈 일은 없다. 자면서 꿈을 꿨다. 울산에서 봤던 근본도 없는 관람차를 타고 11시에서 12시로 움직이고 있었다. "보기보다 관람차가 빠르게 도네?" 눈을 뜨자마자 이불에 토사물을 뱉었다. 천장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토사물을 치울 기력이 없었다. 이불을 뭉쳐서 방구석으로 밀어 넣고 손에 집히는 아무 옷가지나 잡아채 덥고 잤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토였다. 그 이후로는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근본도 없는 관람차의 저주인가? 관람차 신이 아픔을 멈춰주면 롯데백화점에 공식 사과문을 띄우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날은 눈을 뜨면 밤이었고, 어떤 날은 오후였고, 어떤 날은 새벽이었다. 다시 잠들 때마다 차라리 눈을 안 뜨길 바랬다. 잠 들은 상태에서 죽으면 호상이니깐. 어차피 사람 다 죽는 데 난 편하게 죽었으니 위너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몰아서 아픈 듯했다. 4일을 쉬지 않고 꼬박 아팠다. 5일째 되는 날 거지꼴을 하고 동네 마트에 가서 오뚝이 죽을 여러 개 사 왔다. 전복, 참치, 단호박, 팥 등 아파도 골라먹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하루 정도는 더 쉬고 싶었다. 병원에 가서 죽을병인 건지 뭔지 진찰을 받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팀장에게 연락해 사정을 얘기하고 하루 연차를 냈다. 다음날 병원에 들러 증상을 얘기하니 독감이라고 했다. 처방해준 약 먹고 푹 쉬면 나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렇게 4일 정도 더 아프고 다 나았다.
원래 부모님과 통화를 잘 안 하는데 추석 때도 역시나 통화를 하지 않았다. 오지도 않았고, 구태여 나도 걸지 않았다. 누구든지 통화를 하게 되면 나 죽을병 걸린 것처럼 아프다고 하소연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그냥 아프면 아픔을 느끼면 그만이다. 남에게 위로받거나 챙김을 받는 게 내 성격과 맞지 않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