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요리사가 된다니?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 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럼 여기서,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어학원을 계속 다니기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스페인어 공부를 이유로 머무르기엔
이제 더 이상 스스로에게 명분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막연히, 스페인에서 유명한 것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봤다.
투우, 기타, 플라멩코, 관광… 뭐 그런 것들.
투우는 일단 너무 위험하고 무서웠다.
그리고 동양인에게 그런 걸 시켜줄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투우사는 웬만한 연예인만큼 인기가 많다던데,
나 같은 외국인에게 기회가 올 리는 없었다.
기타도 생각해 봤다.
스페인은 기타를 연주하는 것도, 만드는 것도 꽤 유명한 나라니까.
하지만 조립 로봇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내가
정교한 기타를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됐고,
연주는… 솔직히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관광은 생각해 보니, 가이드를 하기엔 지식도 부족했고
솔직히 그다지 흥미가 있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나마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건 플라멩코였다.
예전에 그라나다 여행을 갔을 때 본 플라멩코 공연.
화려한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한이 느껴지는 음악.
짧은 마디 안에 수없이 쏟아붓는 발놀림.
그리고 전신을 던져 무대 위를 채우던, 열정적인 댄서들의 몸짓.
나는 그 무대를 보며
감탄했고, 조금은 동경했다.
그런데, 플라멩코를 배워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그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스페인에 남아 플라멩코를 추며 산다는 건
동양인인 나에게는 너무 낯설고, 왠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플라멩코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한국에 돌아가서, 그 문화를 소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근데…
그걸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플라멩코를 배우는 학교도 찾아봤다.
하지만 학비가 꽤 비쌌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이걸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플라멩코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러던 중,
구시가지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지나치던 요리학교가 문득 떠올랐다.
요리는… 어떨까?
솔직히 나는,
밥 짓는 것 외엔 고기 굽는 것밖에 몰라서
거의 반년 동안 고기와 샐러드, 밥만 먹고살았다.
그런 내가 요리를 한다고?
스스로도 웃음이 나올 만큼 말이 안 됐지만—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 현실적인 게 요리학교라고 생각했다.
먹는 걸 좋아하긴 했고,
관심도 조금은 있으니까…
그나마 할만하지 않을까?
(물론, 그 ‘그나마’라는 생각이
얼마나 크고 순진한 착각이었는지는
나중에 곧 알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에 오기 전 읽었던
김문정 셰프님의 '스페인은 맛있다'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어서
막연히 요리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 요리학교를 가자.
그다음엔 어떻게든 되겠지.
나의 현실 회피가 또 발동된 순간이다.
그렇게 나는 요리학교 앞에 섰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그 첫날,
아무것도 모른 채,
‘요리’라는 이름의 문을 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