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학교 첫날.
하지만 그 하루를 맞이하기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 알아봤던 요리학교는
입학시험처럼 스페인어 테스트가 함께 붙어 있었고,
외국인 지원자가 많은 탓에 쿼터제도 존재했다.
내가 입학하려던 해에는
한국인 지원자만 아홉 명이 넘었다고 했다.
그중 딱 두 명만 받을 수 있다고—
그건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다.
나는 요리 경력도 없었고,
스페인어도 능숙하지 않았다.
결국, 떨어졌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내 스페인어는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요리를 배우러 가는 학교인데, 왜 경력을 보는 거지?’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떠올랐고,
계획이 엉켜버린 탓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학생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
최악의 경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세바스티안에서 1년 넘게 살아오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무엇보다 ‘미식의 도시’라 불릴 만큼 요리 수준이 높았기에—
다른 지역으로 가면 아마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나마 생각해본 건 바르셀로나였지만,
당시엔 일종의 ‘홍대병’에 걸려서
그런 대도시엔 절대 가지 않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고집이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 말도 안 되는 고집 덕분이었는지—
결국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다른 요리학교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내 최종 학력은 고졸이었기에
사실 Grado Superior 과정(한국의 전문학사 수준)에도 지원할 수 있었지만,
요리에 대한 기초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Grado Medio(고등학교 졸업 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학교는 공립 직업학교였기 때문에
애초에 가려던 사립학교보다 학비도 훨씬 저렴했다.
입학 전날 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요리를 잘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온 게 과연 맞는 선택이었을까?’
그동안 도망치듯 내려놓은 결정들의 끝에 도착한 이 자리.
이번에도 도망치게 되진 않을까,
막연한 불안이 이불 끝자락을 놓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학교 앞에 섰다.
건물은 생각보다 오래돼 보였고,
건물 입구엔 이미 다들 알고 지낸 사이인지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낯선 스페인어, 낯선 얼굴, 낯선 공기.
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발이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학년 전체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기에,
나는 더 쉽게 눈에 띄었다.
옷도 어색했고,
말도 어색했고,
표정도 어색했다.
주방 실습실에는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햇빛에 번쩍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
칼을 다듬는 소리,
수업 준비를 하는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정말 내가 이 안에서 뭔가를 배우게 될까?’
아직은 믿기지 않았지만,
내 첫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