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필요 없는 베트남 여행지 - Cabramatta

tạm biệt Sydney, Xin chào Cabramatta.

by 최환석

화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A34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뱅스타운을 지나 워릭 팜에 이르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드라이브였다.

그런데 카브라마타에 도착하자, 풍경이 확 바뀌었다.
거리엔 영어보다 베트남어 간판이 더 많았고, 피시 소스 냄새가 창문을 타고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언어도,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모두 낯설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곳은 더 이상 ‘시드니’라는 도시의 일부가 아니었다.
베트남의 시간과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공간, 카브라마타였다.


카브라마타는 197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이후 호주에 도착한 ‘보트 피플’의 주요 정착지였다. 저렴한 주거비와 정부의 이민 지원 정책은 낯선 땅에서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고, 이민자들은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베트남의 음식, 언어, 문화는 거리와 상점, 시장 속에 차츰 뿌리내렸고,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지금의 카브라마타를 만들었다.

카브라마타의 입구를 지키는 프리덤 플라자의 중국식 아치에는 코알라와 유칼립투스가 새겨져 있다. 호주의 자연을 상징하는 이 이미지 위로 베트남어·크메르어·중국어가 병기된 문구가 겹쳐진다. 이 조형물은 단순한 관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공간에 병존하며 만들어낸 상징, 다문화 국가 호주가 ‘공존’을 어떻게 공간 속에 시각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틀 베트남’이라 불리는 카브라마타에선 쌀국숫집과 반미 가게를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거리의 간판과 식당의 메뉴만으로도 이곳이 어떤 문화적 뿌리를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중에서 우리가 찾은 Tan Viet Noodle House는 이 지역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로컬 식당이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였지만 가게 안은 여전히 북적였고, 종업원들은 능숙하게 테이블 사이를 오갔다. 이곳의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를 넘어, 이 동네의 오랜 시간과 관계들이 응축된 형태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모인 손님들의 얼굴, 흐르는 언어, 음식 위에 깃든 익숙한 몸짓에서 그 시간의 두께를 느꼈다.


식당 외관과 내부.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크리스피 치킨 드라이 에그 누들, 하이난 치킨라이스, 돼지고기 폭찹 세 가지를 주문했다.

크리스피 치킨은 오븐에 구워낸 껍질이 고소하게 바삭했고, 속살은 육즙을 머금어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하이난 치킨라이스는 은은한 생강향의 소스와 촉촉하고 부드러운 닭고기로 한층 풍성한 맛을 자아냈고, 돼지고기 폭찹은 달짝지근한 소스가 고기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씹을 때마다 진한 풍미가 퍼졌다.

이 음식들은 익숙한 쌀국수나 반미의 담백함을 넘어, 향신료와 조리법의 조합으로 베트남 요리가 지닌 다채로운 층위를 보여주었다.


이 식당은 중국계 베트남인(호아족) 조리 전통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오너 가족은 ‘중국과 베트남의 유산’을 결합한 요리를 표방하며, 하이난 치킨라이스나 완탕, 볶음면 등 남부 베트남에서 중화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메뉴들을 선보인다. 실제로 베트남 남부의 음식은 중국 요리와 닮은 점이 많고, 이곳에서도 그런 다층적인 미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렇게 한 그릇의 음식에는 단순한 재료나 조리법을 넘어, 이 지역만의 역사와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이런 시간과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카브라마타 역시 음식으로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 된다. 그래서 ‘리틀 베트남’이라는 말도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이곳의 식사와 풍경에서 자연스럽게 체감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자 바로, 일상이 켜켜이 쌓여 무게를 이룬 공간이 펼쳐졌다. 지나가다 보인 가게 진열대엔 과자와 통조림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포장지마다 언어와 색이 겹쳐져 있었다. 낯선 문자와 낯선 제품이지만, 그 안에서 어쩐지 익숙한 생활의 단면들이 읽혔다. 마치 오래전 찬장을, 다른 나라의 골목에서 다시 마주한 듯한 기시감. 그 언어의 배열과 포장 디자인마저, 일상과 이주가 엉켜 만든 풍경처럼 보였다.

낯선 상표들 사이로 친숙한 한국 과자들도 보여서 괜시리 반가웠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간판들이 자연스레 시선을 끈다. 붉은색 한자, 파란 영어, 노란 베트남어. 하나의 가게에 세 가지 언어가 나란히 붙은 풍경은 이곳에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간판들은 단순한 상업 표식이 아니다. 이 거리의 언어는 설명이 아니라, 이민자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기록이자 증표다. 글자 하나, 색감 하나에도 이 지역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가끔은 그 언어와 색이 뒤섞인 풍경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 더 묻게 만든다.

알록달록 눈이가는 간판들이 많았다.

그 언어들이 머무는 건 간판 위에서만이 아니었다. 거리 끝,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그 정체성은 더욱 진한 향과 맛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장 안은 거리보다 훨씬 더 밀집된 공간이었다. 좁은 통로에는 사람들의 어깨가 스칠 만큼 인파가 몰렸고, 조리대 너머로는 따뜻한 국물 냄새와 기름에 튀긴 해산물 향이 섞여 흘러나왔다. 한쪽에선 달큼한 졸임 냄새가 감돌고, 다른 쪽에선 고수와 마늘 기름 향이 미세하게 퍼졌다. 진열장에는 바삭하게 튀긴 생선과 게, 졸인 돼지고기와 새우, 공심채 볶음 등 다양한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각기 다른 색감과 질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에서 음식을 고르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 선택이 아니다. 국물 요리와 조림 반찬, 튀김과 볶음이 나란히 놓인 진열대는, 베트남 출신 이주민들이 쌓아온 일상의 풍경이며, 그들의 기억이 담긴 미각의 기록이다. 투명한 용기에 담긴 음식들은 그날의 식탁으로,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다.

외부인에겐 낯설 수 있지만, 이곳 주민에게는 오래된 루틴이자 익숙한 흐름이다. 예전 다낭에서 우연히 들어선 어느 재래시장의 감각처럼, 관광객의 시선 바깥에 머문 생활의 결이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장은 관광 명소가 아닌, 커뮤니티의 주방이자 축적된 기억의 창고다. 매일같이 국을 끓이고, 반찬을 고르는 움직임 속에서, 베트남 이주자 가족들의 생존이 아닌 삶의 방식이 묻어난다.



돌아가는 길, 도착했을 때부터 눈여겨보던 야채 가게에서 바나나와 토마토를 샀다. 마트보다 가격은 절반 가까이 저렴했고, 선반에는 두리안과 망고스틴, 평소 보기 어려운 동남아 채소들도 놓여 있었다. 손때 묻은 진열대와 간단한 가격표는 이곳의 생활 감각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는 호주의 한 부분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베트남 혹은 동남아에 더 가까웠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언어, 식당과 가게의 분위기, 음식의 향기까지. 이곳은 철저하게 이주자 커뮤니티의 내부 세계에 집중되어 있다.

외지인인 내가 걷고 있자니, 마치 짧은 동남아 여행을 온 듯한 이질감이 남았다. 영어를 쓰지 않고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문득 프리덤 플라자의 아치가 떠올랐다.
코알라와 유칼립투스가 조각된 그 구조물은, 겉으로는 공존의 상징이었지만 이 거리의 풍경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야채 가게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언어로 대화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장을 본다.
음식도, 언어도, 리듬도 나뉘어 있다. 뒤섞여 있는 것 같지만, 묘하게 겹치지 않는다.

카브라마타는 그렇게, ‘함께 있음’ 속의 ‘분리됨’을 보여준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는 종종 이런 풍경을 품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다르지만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경계들.

그 무언의 경계가, 오늘의 기억으로 내 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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