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위에 선 두 개의 맛 - Eastwood

나란히 있지만 섞이지 않는, 시드니의 다문화 경계선

by 최환석

이스트우드는 시드니 북서부의 전형적인 주거지처럼 보인다. 낮은 건물과 넓은 골목, 조용한 주택가가 어우러진 이 동네는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역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아시아가 나란히 자리한다. 동쪽은 한국, 서쪽은 중국. 누구나 알고 있지만 공공연히 말하지 않는 이 경계선은, 함께 놓여 있지만 결코 섞이지 않은 다문화의 병렬적 현실을 상징한다. 어쩌면 이스트우드는 이 도시가 말하는 '다문화'의 실체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트우드는 정육점과 피시앤칩스 가게, 울워스가 전부인 서구적 상업지구였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계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상권의 중심은 빠르게 변했다. 하나둘 사라진 기존 상점 대신, 수십 개의 아시아계 식당과 마트, 카페, 뷰티숍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두 개의 커뮤니티가 서로를 마주 보며 공존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되었다.

호주 전역에 단 하나 남은 레트로 woolworths 간판. 변화 이전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기억을 간직한 채,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있다.

이 변화는 공식적인 절차에도 반영되었다. 동쪽 rowe street 일대는 2022년 NSW 주정부와 라이드 시의회가 '코리아타운'으로 정식 지정했고, 반면 서쪽 '차이나타운'은 2023년 지역 자원봉사자와 상인 단체 Eastwood Chinatown Chamber가 주도한 브랜딩을 통해 시와 주정부의 인정을 받았지만, 시의회 결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이스트우드의 다문화는 자연스러운 융합이라기보다는, 행정과 커뮤니티 주도라는 서로 다른 동력 위에 구축된 명확한 구획의 병존에 가깝다. 그 결과, "이곳은 한국, 저곳은 중국"이라는 경계 의식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코리아타운 간판과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마트

이 구획은 특히 음식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코리아타운에 들어서면 해장국집과 고깃집, 치킨집, 한국식 횟집이 이어지며 거리에 선명한 한식을 새긴다. ‘888 고깃집’에서 저녁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면 참지 못하겠고, ‘갯바위 횟집’에선 한국 횟집을 그대로 가져온 듯 싱싱한 생선이 보이는 수족관과 노량진과 다를 바 없는 스타일의 회가 나온다. 한국식 빵집 ‘라빈느’에선 단팥빵과 크림소보루가 진열장을 채우고, 한국에도 매장이 있는 ‘만랩커피’가 익숙한 폰트로 코리아타운 한복판에서 아메리카노를 건넨다. 그 사이를 ‘송미정 약국’과 ‘강남병원’이 메우고, 곳곳의 한글 간판과 어느 매장에서 가끔 흘러나오는 구식 K-POP 음악은, 이방인인 나도 잠시나마 고향의 기억에 잠기게 만든다.

코리아타운 거리 풍경. 여길 걷고 있으면 시드니가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반면 차이나타운으로 발길을 옮기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간판엔 온통 중국어만 적혀 있어, 어떤 가게가 뭘 파는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감이 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식자재 가게에선 생강, 말린 표고, 오리알, 중국 소스들이 가득 쌓여 있고, 진열대에 통닭이나 오리를 걸어둔 차이니즈 BBQ집 앞에는 손님들로 줄이 한가득이다. 딤섬 가게, 훠궈 전문점, 버블티 샵이 줄지어 손님을 맞고, 거리 전체를 감싸는 향신료와 육수 냄새는 강렬하면서도 낯설다. 모든 것이 분명한 질서로 운영되는 듯하면서도, 외부인인 나에겐 여전히 해독되지 않는 언어와 풍경이다.

차이나타운 거리 풍경. 식자재를 사고 싶어도 저렇게 중국어로만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풍미의 생태계는 식자재에서도 이어진다. 코리아타운 쪽 정육점에는 얇게 저민 불고기와 달큼한 양념 갈비가 정갈하게 포장되어 있고, 차이나타운 쪽 정육점에는 통삼겹, 돼지꼬리, 족발, 오리 목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정육점만 보더라도, 두 커뮤니티의 식탁이 얼마나 다른 감각 위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코리아타운 안에도 중국 식당이 있고, 차이나타운 골목 어귀엔 한국식 고기 뷔페나 소주와 안주를 파는 포장마차풍 식당도 성업 중이다. 얼핏 보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상이 있는 듯하지만, 이런 몇몇 사례만으로 이곳을 ‘조화로운 다문화’라고 말하긴 어렵다. 경계는 여전히 분명하고, 그 사이를 오가는 흐름은 일상이라기보단 예외에 가깝다.


그렇게 구획과 혼재가 겹쳐진 이스트우드를 걷다 보면, 결국 발길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익숙한 음식과 기억이 깃든 자리다. 아내와 내가 이스트우드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 바로 코리아타운 초입에 자리한 ‘진불닭’이다. 이곳은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유행했던 불닭을 그대로 옮겨온 가게다. 본국에선 이미 유행이 지난 메뉴였지만, 시드니에서는 신선한 충격처럼 받아들여졌고, 단숨에 맛집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화려한 간판은 없지만, 널찍한 테이블 간격이 마음에 든다. 메뉴판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 셀프바에서 마카로니 샐러드와 치킨무를 덜어오는 동선까지, 모든 게 자연스럽다. 가게 안 풍경은 마치 한국식 식사의 장면을 정교하게 복제해 놓은 듯하다.


불닭은 이름 그대로, 한 입 먹는 순간부터 강렬한 매운맛이 혀끝을 휘감는다. 자극은 빠르게 퍼지고, 얼얼함은 쾌감으로 이어진다. 너무 맵다고 느껴질 땐 계란찜 한 숟가락이 그 매운맛을 부드럽게 눌러준다. 뜨거운 자극과 포근한 완충이 교차하는 이 맛의 패턴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온전히 작동하는 일종의 향수다.

치즈불닭과 계란찜. 놀랍게도 불닭은 유행할 때 못먹어보고 시드니에서 처음 먹어봤다.


반면, 역 반대편 차이나타운의 ‘Peijie Hotpot’은 전혀 다른 리듬으로 나를 맞이한다. 우리는 백탕과 홍탕을 함께 주문해 각자 좋아하는 재료를 골라 넣는다. 홍탕은 혀를 마비시킬 듯한 얼얼함을 남기고, 백탕은 부드럽지만 느끼한 여운을 남긴다. 매운맛이 과해질 즈음 꿀떡 하나를 쪼개 먹는다. 쫄깃한 떡을 깨물면 달콤한 깨 소가 사르르 퍼지며 자극을 부드럽게 눌러준다.


주위를 보면 테이블마다 김이 자욱하고, 가게 안은 중국어 대화로 가득하다. 외부에서 사 온 버블티가 식지 않게 곁에 놓여 있고, 시끄러움 속에서도 중국어로 화상통화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템포 속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각 식사의 리듬을 이어간다. 그 풍경은 하나의 세계이자, 내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는 리듬 위에 놓인 공간이다. 하지만 그 이질감조차도 어쩐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의 식탁을 잠시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홍탕의 얼얼함은 강렬함을 넘어 배를 움켜쥘 정도였다.

진불닭에서의 얼얼한 불닭과, Peijie hotpot의 화끈한 홍탕.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지만, 그 둘 사이를 오가는 나의 일상은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익숙함을 ‘공존’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스트우드의 음식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지만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나는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진불닭에서 식사를 하고, 차이나타운에 들러 버블티를 사 오지만, 그 경험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다문화를 말하면서도, 정작 각자의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나 자신을 자주 목격한다.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는 호주 정부가 내세우는 공식 담론이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이스트우드의 다문화는 때로는 병렬적이고, 교류보다는 병존에 가까운 구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거리에서 음식을 통해 작은 위안을 얻는다. 불닭을 먹으며, 베이징덕을 먹으며, 차가운 경계 위에 떠 있는 나의 하루가 잠시 따뜻해진다.


이스트우드는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공존이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문화가 단지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 ‘함께’라는 말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나는 다음 골목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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