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랄이라는 이름 아래 나뉜 식탁들
시드니 남서부의 라켐바(Lakemba)와 펀치볼(Punchbowl)은 중동과 남아시아 음식이 한데 뒤섞인, 할랄 푸드의 본진 같은 거리다. 무슬림 커뮤니티가 밀집한 이 지역에서는 거리 곳곳엔 할랄 식당과 향신료 가게, 식자재점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시드니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음식의 냄새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내가 사는 펀치볼은 주거지가 중심인 조용한 커뮤니티다. 저녁 무렵이 되면 아파트 복도엔 커리와 양고기 냄새가 퍼지고, 상가 거리엔 향신료 가게 앞에서 진한 쿠민 향이 훅하고 들어온다.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 가장 생경했던 건 정육점이었다. 진열대엔 닭고기와 양고기만 가득했고, 돼지고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울워스에 가면 몇 종류를 팔긴 했지만, 손도 타지 않은 채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이건 단순한 소비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이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식문화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명확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무슬림 커뮤니티의 구성이 궁금해졌고, 바로 옆 동네인 라켐바에 발걸음을 옮겼다. 펀치볼이 조용한 생활 중심지라면, 라켐바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복잡한 거리였다. 할랄 정육점, 식자재 가게, 중동 디저트 가게, 무슬림 국가들의 식당이 한 블록 안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고, 거리엔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운전 중인 차량이 인도에 있는 지인에게 빵빵거리며 인사하고, 상점 앞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듯한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예전에 터키를 여행했을 때도 비슷한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좁은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지나가는 행인에게 손을 흔드는 상인들. 문화권은 달랐지만, 그 거리의 정서엔 공통된 온기가 있었다. 라켐바의 풍경은 그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라켐바의 음식 문화는 더 흥미로웠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아랍 음식점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만티, 만사프, 케밥, 커리, 양고기 요리 등 낯선 이름과 비주얼의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참 재밌게 보던 지구마불 세계여행에서 본 탈리도 보였다.
하지만 그 풍경을 ‘경험’으로 바꾸기까지는 마음속에 놓인 거리감을 넘어야 했다.
나는 사실 중동 음식에 대해 오래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 파리 여행 중, 어떤 블로거의 추천으로 팔라펠을 먹었다가 체한 기억이 있다.
스페인에서 열린 포틀럭 파티에서는, 비건 친구가 가져온 후무스를 예의상 몇 입 먹었는데, 코끝을 맴돌던 강한 쿠민 향이 하루 종일 불쾌하게 남았다.
그런 기억들이 쌓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향신료가 강한 음식을 피하게 됐다.
터키 여행에서는 대부분의 음식이 잘 맞았지만, 병아리콩이나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요리는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입보다 기억이 먼저 반응했던 걸지도 모른다.
여러 날을 망설이다가 결국 집 근처에 위치한 펀치볼의 인기 식당 ‘Al Yasmin’에 들어갔다.
항상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북적이던 곳.
식당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등장한 건, 기본 상차림이었다.
절임 야채와 생양파, 토마토, 초록 고추, 민트잎이 둥근 접시에 가득 담겨 있었고,
곁에는 걸쭉한 마늘 소스와 붉은빛의 매운 소스,
그리고 얇은 피타 브레드는 비닐에 싸인 채 바구니에 담겨 나왔다.
피클은 예상보다 짰다.
신맛보다 짠맛이 훨씬 강했고, 생양파는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입천장을 찌를 듯한 매운맛이 퍼졌다.
민트는 개인적인 기호로 손이 가지 않았지만, 상차림의 향을 완성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마늘 소스는 이 집의 강점 중 하나였다.
시판 제품보다 짠맛이 적었고, 마늘 향도 과하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반면, 붉은 소스는 경고 없는 매움이었다.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혀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매운맛이 짧고 강하게 지나갔다.
맛이라기보단 감각에 가까운 자극이었다.
메인으로 주문한 건 세 가지였다.
‘믹스 플레터’, ‘치킨 만사프’, 그리고 사이드로 ‘고구마튀김’.
각기 다른 재료와 조리법으로 구성된 세 가지 메뉴는
이 거리의 식탁을 한 접시에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줬다.
고구마튀김은 기대 이상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포슬했으며,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하고 고소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다.
함께 나온 디핑 소스는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크리미 한 질감에 은은한 향신료의 기운이 섞여 고구마튀김과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
단순한 사이드 메뉴라기보다는, 오늘의 식사를 가장 편안하게 풀어주는 맛이었다.
치킨 만사프는 넓은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노란 향신료 밥 위로 결결이 찢긴 닭고기가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엔 아몬드와 캐슈너트이 한 줌 가득 뿌려져 있어 고소한 인상을 더했다.
밥 위에 견과류가 올라간 건 처음 보는 조합이라, 눈으로 먼저 호기심을 자극했다.
곁들여 나온 하얀 소스는 요거트를 베이스로 오이가 다져 들어간 듯했다.
밥을 먹어보니 오뚜기 3분 카레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풍미가 스쳤다.
향신료의 향은 은은했고, 닭고기는 부드럽게 익어 거부감 없이 먹기 좋았다.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조합.
다른 식문화에 한 걸음 들어섰다는 느낌을 부담 없이 전달해 주는 접시였다.
믹스 플레터는 이 식당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성 같았다.
숯불에 구운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꼬치가 한 줄씩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그 옆엔 다진 고기 반죽을 튀긴 키베(kibbeh), 병아리콩 튀김인 팔라펠,
상큼한 타불리 샐러드와 부드러운 후무스까지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전체적으로 숯불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고,
소고기와 양고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촉촉하게 익어 있어 인상 깊었다.
특히 양고기는 특유의 누린내가 거의 없어서,
평소 양고기를 꺼리는 아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닭고기는 약간 퍽퍽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를 해치진 않았다.
타불리 샐러드는 느끼해질 즈음 입안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했고,
후무스는 약간 짠 편이었지만 향신료가 강하지 않아 중동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도전해 볼 수 있는 맛이었다.
다만 키베는 한 입 먹었을 땐 괜찮았지만,
입 안에서 퍼지는 익숙지 않은 향신료 향 때문에 결국 다 먹진 못했다.
팔라펠은 개인적인 기억 탓에 이번에도 건너뛰었다.
접시 위엔 낯선 조합이 많았지만, 그 낯섦이 곧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향이었지만, 마늘 소스의 진한 풍미나 소고기의 부드러움,
고구마튀김의 바삭한 단맛 같은 디테일들이 그 거리의 낯섦을 천천히 누그러뜨렸다.
식사를 마친 뒤, 바로 근처에 있는 중동 디저트 가게에 들렀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바클라바, 마암울, 쿠나파처럼
생소하지만 정갈한 모양의 디저트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우리는 바클라바랑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바클라바는 겉은 결이 살아있는 얇은 페이스트리 층이 정교하게 쌓여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피스타치오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시럽에 적셔져 반짝이는 겉면 위로 잘게 부순 견과류가 솔솔 뿌려져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한 결이 무너지며 입안 가득 고소하고 진한 단맛이 퍼졌다.
설탕이 많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부담스럽지 않았고,
특히 피스타치오의 고소함이 단맛을 잘 잡아줬다.
디저트를 마무리한 건 아이스크림 한 컵이었다.
진열장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두바이 초콜릿’과 ‘망고’ 두 가지 맛을 골랐다.
망고는 예상했던 그 상큼 달콤한 맛보다 더 진했고,
한 입 넣자마자 과즙의 농도와 열대과일 특유의 산미가 입안을 감쌌다.
반면 두바이 초콜릿은 좀 더 독특했다.
진한 다크 초콜릿 아이스크림 위에 피스타치오 베이스의 초콜릿 조각이 올라가 있었는데,
겉은 살짝 단단하고 안은 부드러웠다.
이국적인 초콜릿 향과 피스타치오의 고소함이 묘하게 어울리며 낯선 조화를 만들어냈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멀게만 느껴졌던 이 거리의 풍경이,
음식 한 끼를 사이에 두고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라켐바는 여전히 낯설고, 펀치볼도 여전히 조용하지만,
향신료 냄새에 놀라지 않고, 정육점에 돼지고기가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보며,
이 커뮤니티가 어느새 내 일상 속에 스며들었음을 느꼈다.
해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라켐바 거리에는 나이트 마켓이 열린다.
해가 지고 금식이 끝난 저녁,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음식을 나누고,
곳곳에서 고기 굽는 냄새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진다.
그 풍경을 언젠가 직접 마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그저 한 끼를 함께 먹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