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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샘 Sep 11. 2024

어긋난 첫 단추

금단의 사랑

함께 한 사랑에서 일방적 이별선언은 무효하다.

이별도 같이 해야 한다.

난 그 이별을 같이 못해 결국 금단의 사과를 먹고 말았다.


까만 밤하늘에 보석같은 별들이 유난히도 밝게 빛나던 밤이었다. 헐떡거리며 뛰어 가는 길 앞으로 은하수가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나의 가는 길을 밝혀라도 주듯이. 얼마나 달렸을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허겁지겁 신고 나온 고무신은 언제 벗겨졌는지 버선코가 발등위까지 올라와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집 간 첫날 밤 도망쳐나온 신부가 되었다.

신방에 든 신랑을 보는 순간 나의 결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도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그깟 결혼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게 무슨 복수가 될 수 있다고. 처음으로 선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시집을 가리라 선언해버렸다.  백말띠라 팔자가 셀거라는 점쟁이 말에 늘 노심초사하던 엄마는 드센 딸 입에서 순순히 결혼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자 서둘러 혼처를 구했다. 그가 떠난 지 채 한달이 못되어 시골이지만 제 땅 갖고 농사짓는 유복한 집안의 장남이라는 이와 혼담이 오갔다. 신랑되는 이는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갔다지만 정작 신부인 나는 생면부지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10대는 이성의 외모가 중요하다. 하긴 남자 외모를 보는 건 그 때뿐 아니라 평생 그랬다. 딸들이 결혼한다고 사윗감을 데려올 때도 허우대가 멀쩡한 것부터 봤다. 나의 불치병이었다. 농사짓는 남자얼굴이 고우면 얼마나 고왔겠는가? 첫날 밤 검게 그을린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참 철없을 때였다. 도무지 신랑얼굴을 볼 수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아픈 흉내를 냈다. 다행히 신랑은 아픈 나를 혼자 두었다. 그것이 그와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밤에 이전에 온 적도 없는 동네를 도망나왔다.시집을 간 곳은 경주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시골동네였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을 떠나 신작로를 따라 무작정 달렸다. 어디로 가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워 걸어 새로운 동네로 들어섰다.


한번 결혼하면 일부종사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던 시대에 첫날 밤에 도망나온 여자가 갈 곳은 어디도 없었다. 그저 생각나는 곳은 대구, 오라는 이는 없지만 보고픈 이는 있는 그곳으로 발길이 저절로 향했다. 시집가면 알게 모르게 돈 쓸 일이 있을거라며 엄마가 몰래 챙겨준 패물과 현금을 가슴에 끌어안고 무작정 대구로 갔다.


1960년, 조용하던 시골과 달리 도심은 시끌시끌했다. 경찰서 앞은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갈 곳없던 나는 종일 그가 발령받아 간 경찰서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역 앞 여관에 몸을 누였다. 엄마와 동생이 보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갈 수가 없었다. 혹여 도망간 나를 잡으러 신랑이 왔을까 더 갈 수가 없었다.그에게는 더더욱 못갔다. 그렇게 나의 열여덟살은 저물고 있었다.


해가 바뀌어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고 일을 하는 티도 안나는 나를 이상히 여긴건 여관주인이였다. 당시만 해도 전쟁의 여운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고를 하던 때였다. 돈이 없어보이지도 않고 일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 어디를 둘러보고 지내는 꼴이 수상하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고 말았다.


그날도 늘 하던 습관대로 아침엔 대구역 역사 의자에 한참을 앉았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먼 발치서 여관 주인과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주인은 나를 가르키는 듯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었다.  멀리서도 나는 그를 바로 알아봤다. 그가 뛰었다. 순간 어디로 사라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 또한 이미 뛰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지 일년이 채 안되어 다시 만났다.


훗날 그는 내가 결혼은 했지만 시집에서 도망갔고 이후론 친정에 연락도 끊어버려 생사를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방으로 나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리고는 잠시 서울청 파견을 갔다 대구로 내려온 첫날, 여관주인의 신고를 접한 것이었다. 이름도 연령대도 비슷한 여자를 신고받고는 자청해서 달려온 것이었다.


헤어진 지 일년이나 흘렀지만 그는 똑같았다. 마치 어제 보고 헤어진 사람처럼 익숙하고 다정했다. 젊은 여자 혼자 여관에 지내게 할 수 없다며 대구관광호텔로 옮겨주었다. 여관주인에게는 먼 고향 친척 여동생이라며 신고해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따로 했다. 그렇게 재회한 우리는 더 뜨겁게 사랑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한동안 지냈다.


그와 나는 같이 살 집을 구했고 그 곳에서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낳으니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그제서야 그가 아내가 있는 남자라는 현실에 눈이 떴다. 우리는 그 어느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관계였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신분의 사람에게는 더더욱 드러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살아갈 수는 있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집을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갈수록 관계가 서먹해지는 남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그의 아내와 부모가 결국 나를 찾아내고 말았다. 처음엔 그의 아내가 다녀갔다. 이후엔 그의 부모, 형제들이 수시로 나를 불러내거나 집으로 찾아왔다. 회유에서 협박까지 다양한 수단들이 동원되어 나를 궁지로 몰았다. 둘을 떼어놓으려는 가족들의 노력은 집요했다


아이가 일곱살이 됐을 때였다.

결국 친정엄마에게 소문이 들어가고 말았다. 언니와 형부들이 함께 집으로 들이닥쳤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도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딸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을 보더니 엄마는 하염없이 소리내어 울었다.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시집을 보낸 자신을 탓하며 당장 짐을 싸라고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고향으로 가자고 했다. 이미 고향에는 시집 간 첫날 밤에 도망친 팔자 센 여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짐을 싸 고향으로 가기엔 이미 그 곳에 너무 길들여져있었다. 안가면 차라리 같이 죽자는 엄마를 설득해서 정리하고 내려가겠노라며 돌려보냈다.


모두가 알아버린 그 때, 이젠 나 혼자 아이를 키워보겠다며 몰래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 알루미늄 냄비공장에 취직을 했다. 누구에게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세들어 산 주인 집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늦게 잔업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아이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에 오질 않자 혼자서 밖을 서성이다 사고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뺑소니 차에 치인 아이는 주검이 되어 내 앞에 왔다. 아이를 붙들고 짐승처럼 울었다. 제대로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떠난 아이 앞에서 나의 20대는 힘없이 주저 앉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그도 내 삶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집안에만 있었다. 동네가 아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어디 마음놓고 다닐 수도 없었다. 나의 서툰 사랑, 금단의 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와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긴 채.


한번 잘못 채워진 단추는 과녘을 벗어난 화살과도 같아 20대밖에 안된 내 삶에 짙은 주홍글씨를 새기고야 말았다.


안타깝지만 타고난 기질이 강한데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펄펄 살아 날뛰던 나이였다. 윤리나 도덕보다 심장이 나대는 사랑에 더 강렬하게 이끌릴 때였다.


왜 나는 불구덩이가 뜨겁다는 것을 굳이 들어가보고서야 뜨겁구나했을까?  

가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는 길이였는데 왜 그걸 애써 무시했을까?

이성보다 감성이 더 나를 지배했던 탓이었을까?

그냥 조용히 내게 주어진 운명에 순종해 살았다면 모두가 안녕하지않았을까? 그러면 어느 시골의 얌전한 아낙네로 아이들 키우며 남편과 가족들에게 존중받고 살지 않았을까?


누가 사랑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거다.  

사랑이 아무리 좋아도 가야할 길이 아니면 가서는 안된다.

한번 어긋난 인연은 억지로 맞춰본들 결국 어긋난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이 또한 무색해진다.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된다.

어떤 미사여구도 하지 말아야 할 사랑에는 올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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