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우리도 주방과 아이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고나니 50이 훌쩍 넘어버렸다.
모두가 우려하던 빈둥지증후군 초반 증상이 우리에게서 시작되었다. 늘 애타게 엄마와 아내를 불러대던 가정에서 우리를 찾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처음엔 남아도는 시간이 많아 행복했다. 친구들과 때 맞춰 놀러가고 평생 맘만 있지 편히 못해봤던 취미활동도 시작했다. 한동안 좋았다. 드디어 나만의 인생을 그려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안되어 만족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였지만 일에 대한 보상이 없었던 주부로서의 시간, 보상이 없다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도 없어진 자리, 우리는 필요를 찾아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인연으로 운좋게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웃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거센 도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다행히도 집중력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노력을 보상해주는 국가자격증이 있었다.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공인중개사 이 세 자격증은 취업을 갈망하는 50대 여성들이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진입장벽이 다소 높지 않은 국가자격증들이다. 그렇게 도전을 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관련 취업전선에 들어가기도 했다. 특히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간병업무에의 취업길은 많이 열려있는 편이다.
그길을 가지 않은 이들, 작정하고 취업길을 들어가기엔 너무 뜬금없는 몸부림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남은 건 아르바이트 뿐이였다. 대학을 나오고 나름 전공과목이 전문성이 있는 데다 직장생활도 해본 이들이라 나름 기대가 있었다. 이전에 전공살려 일을 해봤을 때만큼 그럴싸한 일을 하진 못해도 그 언저리 정도에서 필요한 일은 하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꿈이 너무 컸었나? 돌아오는 건 실망감과 무력감이었다.
-오라는 데는 설겆이와 애보는 것밖에 없어.
경력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경력이 제대로 인정되기도 전에 가정에 보금자리를 튼 이들에겐 학벌만 있을 뿐 인정될 경력이 없었다. 전공학문의 전문성을 살려 제대로 일을 하게 해주는 기회는 50대 여성들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설계하지도 않았다. 그럴싸한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리의 기대는 그저 과거의 기억에 저장된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전문같은 것이었다.
-설겆이와 애보는게 어때서?
곧 우리는 60대가 된다. 애써 직장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곧 직장이 생길거다. 바로 설겆이와 애보는, 일은 아니지만 일로 해야하는 것 말이다. 자녀들은 곧 결혼하고 아이가 생길거다. 그리고 우리의 젊은 시절을 오롯이 배팅해야했던 육아와 가사가 자녀들에게 주어질거고 자연스럽게 여전히 혈기왕성한 우리에게로 넘어올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하진않는다. 필리핀에서 넘어온 전문도우미가 아무리 좋다해도 혈육만하랴. 우리가 경험한 것이라 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50대의 이 시간을 애보기와 설겆이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것이 싫다.
그래서 이제 60대를 바라보는 우리는,
애써 멋진 사람으로 도배하려고 하지도 말고
돈을 버는 유용한 존재로 몰아세우지도 말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현재를 좀 더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살아보자.
조금 아쉬워도
조금 절박해도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내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