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로 살아남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될 때 접는 건 사업이 아니다
-우리 이제 그만할까?
-한 달만 더 해보시죠!
사장 같지 않은 나와 사장처럼 일한 직원의 최근 대화이다.
2008년 7월 1일, 나는 처음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우연히 일로 만난 사람이 갑자기 매장을 접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인수의사를 물어왔다. 당시 친정엄마가 갑자기 쓰러져서 돈이 많이 들어갈 때였다. 얼마를 버는지 모르지만 도움이 될 것 같았고 결혼을 하고도 자리를 잡지 못한 동생부부에게 기회가 되려나 싶어 고민 끝에 인수를 했다. 넘겨주는 이도 아쉬움이 많고 받는 나도 선뜻 받기에 미안함이 있어서 둘은 참 묘한 계약을 했다. 언제든 돌아오면 함께 할 것 같은 이상한 뉘앙스의 조건을 달아두고서도 안 팔리고 있던 악성재고를 다 떠안았고 수개월 밀린 채무도 다 내가 해결하기로 했다. 거기다 권리금을 따로 안주는 대신 매달 100만 원씩 2년을 주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멍청한 짓이었다. 이 계약조건은 훗날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했다.
사장이 바뀌니 채무독촉이 바로 들어왔다. 그래도 직장을 다닐 때라 월급으로 조금씩 갚아 나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 사장 밑에 일하던 이가 매장인수를 하고 싶어 했는데 나처럼 채무는 안 떠안고 재고만 가져가기로 제안했었단다. 물론 추가로 주는 돈도 없이 말이다. 결국 호구가 된 셈이었다. 나의 최대약점은 안면이 있는 사람과는 냉정한 계산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사업인데 따질 건 따져야 했었다.
급하게 받은 매장,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따로 있던 사업자라 힘들어도 잘 버텼다. 직장인 신용으로 대출을 할 수도 있었기에 자금이 그렇게 많이 막히는 느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싶은 건 동생부부를 불러들여 둘 다 급여를 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얼마를 벌지도 모르면서 일을 하니 급여를 줘야 한단 생각만 했다. 정말 나 같은 사람은 사업하면 안 된다.
드디어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진 곳은 처음 인수받은 장소가 재개발예정지였다는 사실에서였다. 물론 인수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제든 나가라 할 때 나가야 할 곳이다 보니 그 시기는 미정상태지만 언제든지 비울 준비를 해야 했다.
매장의 특성상 새로운 장소도 병원 주변 상가에다 가급적 1층이어야 했다. 하지만 1층은 이미 과포화상태였고 어쩌다 나온 곳은 임대료가 너무 높았다. 1층을 간절히 바랐지만 도무지 나오질 않아 위치만 고수하고 2층을 계약했다.
하지만 재개발이 자꾸 지연되면서 이사 갈 갈 날이 정해지지 않았다. 당연 임대료는 이중으로 나갔다. 이사를 하지 않아도 새 주인은 눈도 깜짝 안 했다. 재개발 지연으로 계약기간 2년에다 추가 3개월까지 악착같이 임대료를 챙겨갔다. 세상 참 무서웠다. 그 임대료를 내면서도 기존 있던 1층 매장의 장점 때문에 재개발 확정 전까지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미련하게도 그때부터 무너짐의 징조가 시작됐는데 내가 열심히 하면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드디어 재개발은 시작되고 1층 매장을 비웠다. 재개발로 인한 보상금이 나왔다. 주인이 아니다 보니 1년 임대료 정도가 나왔다. 나에게 사업을 넘긴 전 주인은 그 돈이 자기 것이라고 권리를 주장했다. 이미 새 매장계약건으로 보상금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냈던지라 줄 수 없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받는 사람은 마음이 달랐다. 잊을만하면 전화가 와서 돈을 요구해 결국 할부 갚듯 주고 말았다.
이 정도로 사업성이 없는데 왜 빨리 정리하지 못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이 점이 가장 후회가 된다. 이후 3층, 1층, 지금의 2층매장까지 수차례 이사를 했다. 그 사이에 나 또한 직장에서 퇴사를 했다. 퇴사하고 난 다음 당장 갈 곳이 자영업자로 살아가야 하는 매장이었다. 이 매장이 없었다면 난 좀 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을 텐데 여기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퇴사했으니 이제부터 집중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한 자영업자가 될 것 같은 희망고문에 차일피일 폐업을 미뤘다.
여전히 둘의 월급을 주며 비싼 임대료가 나가는 구조에서 퇴사를 한 내겐 월급이 들어오질 않았다. 남들은 6~8개월은 받는다는 실업급여도 없었더. 직장을 20년 넘게 다니며 고용보험료를 냈어도 사업자등록증이 있으면 실업급여 한 푼 못 받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매장 경영에 빨간 불이 바로 들어왔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직장월급의 힘이 무서웠다.
이사 간 곳이 1층이 아닌 3층이라서, 병원 바로 앞이 아닌 길건 너라서 임대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급여는 꼬박꼬박 줬는데 결국 이것마저도 힘들어졌다. 처음엔 둘 중 한 사람의 급여를 줄여보았지만 이마저도 어려워 정말 하기 힘든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은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사실 아주 오래전에 했어야 했던 말이었다. 그래도 그때 한 덕분에 다른 직장을 구해 더 잘 다니고 있다. 나의 우유부단함이 타인의 미래도 어둡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3층이라 어려운가 해서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의 1층을 택했지만 이마저도 실패, 지금은 조금 병원 가까운 1층 같은 2층으로 왔지만 병원 바로 앞이 아니다 보니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2008년 개업 이래로 최저를 찍고 말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회복세를 보여 이제 숨을 쉴 수 있있다 싶었는데 순식간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쟁업체의 과다광고에 밀린 것과 기존 판매자들의 우선권 주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나의 게으름과 순진한 사업운영방식 때문이었다. 사업운영방식과 아이템을 살짝만 바꿔도 매출이 늘어나자 이 정도 하면 되는구나 생각하고 발생가능한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젠 진짜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이젠 그만해야 하는 생각이 쑤욱 올라왔다. 급여를 제대로 줄 수가 없다. 일 자리를 알아보라고 권하며 근무시간을 줄였다. 나 또한 이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셔야 하는 절박감이 밀려왔다.
-안 되는 건 접어야지. 안될 수밖에 없게 사업을 하는 거야. 그건 접어야 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도 아닌데 전혀 다른 장르 이야기를 하다 상대방이 훅 던진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접을 용기가 내게 없다.
불치병처럼 늘 희망고문을 한다.
다음 달은 나아지겠지. 새로운 아이템을 도입하면 나아지겠지 하며.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어느 날 내 사업에 기적 같은 구세주가 나타나길?
아니면 더 이상 손 써볼 방법이 없는 수렁에 빠지길?
코로나 때보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더 높다고 한다. 나에 대한 금융기관의 신뢰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도 변함없이 쇼핑몰에 상품을 업로드하고 블로그에 글을 썼다. 나는 언제쯤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다음 문을 열 힘이 있을 때 지금 문을 닫아야 한다. 사업은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사업의 일상은 수학이고 과학이다. 예측가능해야 하고 대응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우린 딱 한 달을 더 있어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것, 무언가에 눌려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
하루하루가 무섭게 지나간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하루는 쏜살같이 나를 떠나가고 있다.
나는 두려움을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 짐승처럼 긴장하고 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