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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Apr 22. 2021

두 개의 마음 한 개의 세상

애매한 나에게 애매한 이웃



우리 집 옆 라인인 203호엔 매일 아침마다 자전거를 닦으시는 어르신이 홀로 살고 계셨다.

자전거를 타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어도 매일 자전거를 닦는 일은 할아버지의 리추얼인듯 했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세상 반짝거렸다.

나는 마음 속으로 203호 할아버지를 ‘자전거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얼마 전,

자전거 할아버지 집 203호 앞으로 이삿짐차가 왔고 덜컹덜컹 큰소리를 내면서 짐을 빼기 시작하는것을 보았다.할아버지의 반짝이 자전거도 이삿짐센터 청년의 손에 들려 나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걸가, 요양원에 가신 걸까 궁금했다.

할아버지에겐 두명의 딸이 있는것을 아는데, 딸들의 의견으로 단순히 더 편한 거처로 이사를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순간 나는 명복을 빌어야 하나, 어디가 많이 편찮으신 걸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할아버지 안위가 궁금해졌다.

그는 십여 년 넘게, 오며 가며 얼굴 보고 지내온 이웃이었다.

우리가 살가운 이웃은 아니었어도 이렇게 아무 소리 소문 없이 떠나다니..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거나한것이 아니니까 나한테 어디로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이삿짐 빼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꽤나 섭섭했던 것이다.

한 동네에 쭉 오래 살았어도 사는 동안 이야기 한번 나눠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어디로 온다 간다 소식을 알리기 애매한 것이다.

이쪽에서 궁금해도 어디 가냐고 붙잡고 물어보기도 애매한.. 말 그대로 우리는 애매한 이웃이었다.

옮길 짐은 다 옮기고 버릴 물건들만이 빌라 한쪽 공터에 나와있었다. 거기엔 할아버지의 반짝이 자전거도 놓여 있었다.

반짝이 자전거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녕 잘지 내.’라고 소리 내는 것만 같았다.


_

애매한 이웃.

빠져나가는 이삿짐들을 보며 우리는 애매한 이웃이었구나 하고 다시한번 또다시한번 생각했다.



그러고 그다음 날인가?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파를 다듬고 들어와선 8동 할머니가 집을 정리하고 생활 요양원으로 들어가신다는 소식을 전했다.

“에 진짜? 할머니 집 엄청 아끼셨잖아,그래도 살던 내 집이 좋지 않나.”

“노인이 혼자 살면 위험하기도 하고 여러 뭐로 불편도하지. 요양원에서 편하게 지내시는 게 나을지 몰라_ 집 팔렸다더라”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동네 안에서 8동 할머니를 마주하는 게 좋았다.

할머니도 반갑고 무엇보다 내가 평소 내던 소리보다 한톤 큰 소리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8동 할머니와는 자전거 할아버지보다 덜 애매한 이웃이 되는 건가.. 여전히 어딘지 애매했지만 그렇다 치기로 했다.

다음에 할머니를 만나면 언제 어디로 가시는지 여쭤봐야지. 아니다 다음을 기약하다가 가시고 없으면 안 되니까 가시기 전에 찾아뵙는것도 좋겠다 싶었다.


인사하면 “아이고 보람아 어디가노 밥 먹었노” 하고 웃어 보이던 할머니와의 환한 인사는 할머니가 이 동네를 떠나도 언제까지고 동네의 얼굴로 남아있을 것이었다. 이웃과의 심적 거리감은 동네를 맘 놓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왜 그걸 앎에도 불구하고 점점 애매한 이웃이 많아질까.

아니 잠깐, 이웃이 낯설다거나 ‘애매한 이웃’이 많아지는 것은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이웃을 향해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세상이 삭막하게 변하는 것일까. 내가 세상을 삭막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가오는 것을 따뜻하게 받아들일 때 그 자리에 따뜻함이 남는 것인데...

세상의 불온한 소식들에 사로잡혀 점점 주위를 의심하는 경계하는 버릇이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오전, 강아지 럭키와 초이가 보호자와 함께 여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이 베란다 아래로 보였다.

나무에 가려져 보호자 얼굴이 보이지 않았어도 엄마는 베란다 문으로 이웃과 인사를 나눴다. 럭키초이 아줌마도 우리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반갑게 인사를 올려 보냈다. 그러곤 엄마는 시간이 되면 집으로 올라와 커피 한잔 하고 가라며 빈말인 듯 빈말 아닌 말을 권했다. 아줌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강아지 두 마리를 앞세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실례합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거실에 앉아 잠시 커피 한잔을 나눴다. 강아지 이야기를 했고 동네 어느 과일가게의 과일이 맛있다는 정보 같은, 별거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이분이 럭키와 초이라는 이름의 두 마리시츄의 주인이라는 것과 2동에 산다는 것밖에 몰랐지만 이웃으로써 이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지나가는 이웃을 궂이 불러 세워 인사를 나누는 것, 딱히 바쁘지 않다면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하는 것, 

그리고 의심 없이 잠시 반가운 마음을 갖는것, 들어오는 것.

그것으로 충분.

인사를 할까말까 머리로 고민하는 나와 다르게 엄마는 인사부터 건넨다.오늘도 엄마에게 배운다.


빌라 건물이 낡아 윗집의 핸드폰 진동 소리나 아랫집 학생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아주 쉽게 벽을 넘나드는 점점 허름해져 가는 빌라라 해도


내가 살아가는 이 동네를 내가 닫힌마음으로 여전히 잘 모를 뿐, 분명 이 마을은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변함없이 살기 좋을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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