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뱃속이 이상(理想)

입맛이 바뀌었다! [에세이 07]

by 연서글서


“오늘은 내가 파스타 요리사!”


이십 대 초중반, 이색적이고 무드를 즐길 줄 알 때 자주 찾던 외식 일번가는 단연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십 대 때까지만 해도 파스타란 급식 때나 먹던 나폴리탄 스파게티 밖에 없었었는데 내돈내산이 시작되자 친구들 혹은 연인과 만나면 언제나 새로운 파스타 맛집 탐방이 대세였다. 그중 초반에는 빠네를 필두로 크림 파스타 위주로 환장했었고, 중반에는 오일류 파스타로 선호도가 바뀌었다. 나는 토마토소스는 피자가 아니고선 취향에 맞지 않는 편이다.


파스타 평가 기준의 첫 번째는 소스를 얼마나 듬뿍 주는가였다. 이 집 크림소스는 나오자마자 빵에 다 스며들어 면이 뻑뻑해, 저 집 알리오에 올리오는 자박자박한 게 밥 말아먹고 싶어 지네, 등 맛 따라 멋 따라 시식 평가단이 되어 단골 매장으로 선정할지 다수의 도장 깨기 점포 중 하나로 끝낼 것인지 열심히 점수를 매겼었다.


두 번째는 카메라 앵글 안에 얼마나 매력적인 자태를 뽐낼 수 있느냐였다. 맛과 양과 가성비로 따진다면 한스델리나 서가 앤 쿡을 주로 다녔어야 했겠지만 우리에게 ‘레스토랑’이란 그런 것만 따질 게 아니었다. 미슐랭 가이드 평가 기준에도 요리와 어울리는 ‘멋’이란 게 존재하지 아니 한가. 무려 맛 따라 멋 따라 멤버인 나에게는 파스타가 놓일 테이블과 주변시의 어울림 정도가 이븐 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낮엔 파스타, 밤엔 고깃집으로 시간대별 양분화된 외식 선택지를 가졌었고 한국인의 주식 밥이란 결코 밖에서 내 돈 주며 사 먹지 않았다.(물론 다음날 해장을 위한 뼈해장국이나 감자탕을 제외하고 말이다.) 쌀밥은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만큼 맛있는 건 없었고 밖에서 사 먹는 한식은 꽤 비쌌다. 그 돈을 내고 바깥 음식을 사 먹는 다면 집에서는 해 먹지 않고 분위기도 취할 수 있는 외국산이 간지가 있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점차 먹기 시작하면서 파스타라는 것이 어느 집을 가나 그게 그거라는 것과 자취생 요리의 가성비 메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의 외식 메뉴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로는 엄마가 집밥을 해주는 빈도가 무척 낮아졌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하지 않는가. 어느 순간부터 바깥에서 식사를 할 때 나의 검색어는 ‘OO동 밥집 추천’으로 바뀌었다.(맛집으로 하면 주로 술 한잔하러 갈 고깃집들이 즐비하다.) 또 MZ 취향의 혼밥러들이 가기 좋은 예쁜 가정식 밥집들 또한 늘어났다. 솥밥이라던가 일본식이라던가 1인 식기류와 한 쟁반으로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자태가 좋았다. 그렇게 외식 입맛이 바뀌었다.


사실 나는 최근에도 입맛이 바뀌었다. 집에서 파스타를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 역전이 된 형국이다. 비록 나는 엄마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이지만 간단하면서도 가성비와 맛도 챙기고 질리지 않는 자취생 전형의 요리 파스타를 직접 해 먹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삼십 대 초반까지 파스타를 만들어 먹어본 적 없는 나는 그저 심심풀이로 도전해 본 것뿐이었는데 간단하면서 멋들어진 파스타를 내 입맛에 맞게 쉽게 조리된다는 만족감이 무척 높은 유흥거리가 되었다.


나는 토마토소스가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요리한 '고추장 토마토 해장 파스타'는 최고의 맛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벤트로 받아 냉장고에 썩어가던 일본 참깨 마늘 소스를 우유와 함께 하나의 소스로 재탄생시키니 맛도 좋고 재료 소비가 잘 되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나의 만족도를 가득 채워줄 이상적인 요리는 바로 내 손 안에서 탄생하는 파스타였던 것이다.


이젠 우리 집 요리사는 바로 나이다. 오늘도 나는 파스타 면을 삶는다. 특식 같으면서 집밥으로 변모된 나의 파스타는 언제나 실패 없는 맛깔난 요리로 탄생되어 우리 집 식탁을 채워준다. 물론 내 배도 채워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오전 열 시. 슬슬 일어나 아점으로 먹을 오늘의 파스타는 무슨 소스로 만들지 볼지 고민해 봐야겠다.




이번 글 에세이는 작년 8월 달 한참 파스타 요리에 심취해 있었을 때 쓴 글이다. 즉, 하고자 하는 말은 지금의 나는 불 앞에 서고 있지 않다는 것부터 짚고 가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상(ideal)」이란 글감 주제로 동음어를 먼저 생각했었다. 이 글의 제목을 적확히 톺아보면 주제어에 맞추어 내 뱃속'의'로 써야 할 것을 '이'로 써보았다. 적절한 동음어 터치와 주제 ideal, 理想, 이상을 녹여보았다.


에세이를 쓸 때는 언제나 가볍게, 생각의 흐름에 따라 글이 써진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쓰고자 하는 것에 대한 나의 단상을 짚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썼던 글을 다시 고쳐본다. 가벼웠던 글에는 무게감과 깊이가 생긴다. 그렇게 나만이 혼자 보는 일기와는 다른, 타자와 함께 생각하며 보게 되는 변모한 글짓기가 바로 '에세이 쓰기'라고 나는 조금 가볍게 생각해 보았다. 너무 쉽게 쓰면 일기이고, 그렇다고 무게를 넘치게 주면 읽기도 쓰기도 괴로우니 이 점을 주의하며 타인과의 공감을 가져보는 글쓰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조심스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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