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쾌락

나혼자 비혼 [초단편 08]

by 연서글서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하게 어울렸던 친구들을 만난다. 이게 몇 년 만인지 기대 반, 설렘 반에 며칠 전부터 계속 들떠있었다. 오늘을 위해 미용실도 다녀오고 백화점에서 옷도 새로 장만했다. 아껴뒀던 명품 백도 들어야지. 얼굴은 어젯밤 영양을 듬뿍 먹여둔 덕분에 오늘 피부 화장이 아주 잘 먹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로 입꼬리를 올리며 마무리로 올 F/W 시즌 컬러에 잘 맞춘 신상 립을 올려주었다.


평상시엔 잘 신지 않아서 발이 좀 불편하지만 한껏 꾸몄으니 구두도 꺼내 신었다.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돌아보는데 난 어째 이십 대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나 싶다. 그래, 사실을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릴 때의 생기발랄하긴 하나 촌스럽기까지 하던 그 풋풋함은 사라진 대신 농숙함이 들어섰다. 즉, 지금의 나는 젊고 예쁜데 섹시하기까지 하다는 말이다. 어리기만 한 여자애들보다 완숙미까지 갖췄으니 어딜 내놔도 전혀 꿀릴 게 없다 이 말이지.


택시에 내려 약속 장소에 들어섰다. 서로 관심사도 같고 말도 잘 통해서 오래 함께 했던 친구들인데 이십 대 중후반부터인가 하나, 둘씩 각자의 사정으로 연락이 뜸해졌다. 새해나 명절 때 오고 가는 안부 인사로 어찌어찌 연락이 이어져 오늘과 같은 날이 어렵게도 성사된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희생도 크다. 사는 곳도, 라이프 스타일도 다른 친구들이기에 큰맘 먹고 아껴둔 연차를 쓰고 장거리를 이동해 만나러 왔다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 소중한 너희를 만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썼다니 나는 인성도 좋아.


“은아야~ 여기! 이게 얼마 만이니!”


이미 먼저 모여 있던 친구들이 일어서서 나를 반겨준다. 계집애들. 반가운 옛 얼굴들을 보니 뭉클해져 방방 뛴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 만이냐고 꼭 이렇게 내가 나서야 봐지는 거니. 한차례 가게가 떠나갈 듯 인사를 나눈 우리들은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친구들 얼굴을 하나 둘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친근했던 얼굴들에 묘하게 낯선 나이 듦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쩜 은아야 넌 변한 게 없니~ 우린 다 아줌마가 됐는데 말이야. 부럽다, 야~”

“애 딸린 유부녀들이랑 처녀를 비교하면 어떡하냐~ 은아야 넌 결혼하면 절대 애는 낳지 마라~”

“아, 맞다. 은아는 비혼주의라 했지!”


까르륵 재잘거리던 소녀들의 만남을 기대했던 나는 낯선 아줌마들의 수다장에 당황하고 말았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애들 아빠가, 우리 애가, 학군지는, 학원은, 집값이… 대화에 끼지 못한 채 나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누구의 아내이자 누구의 엄마라는 타이틀 안에서의 대화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본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고 있다. 너희 어쩌다 너희를 잃었니? 그런데 어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행복해 보이는 걸까?


“은아야 넌 요즘 어때?”


한참 서로 육아 정보라거나 살림 정보 등을 주고받던 친구들은 그제야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 나는 그 옛날 함께 공유했던 우리의 관심사들의 발전된 정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요즘은 옛날과 어떻게 달라지고 뭐가 유행하는지도. 나의 뒤처지지 않는 세련됨을 친구들에게 풀었다. 처음에 잠깐 관심을 보이던 친구들은 점차 흥미를 잃고 무미건조한 사인을 보내며 화제를 전환한다. 또 그들만의 대화를 말이다.


“근데 은아야, 넌 정말 결혼 안 해?”

“애 낳으려면 더는 늦어지면 힘들 텐데.”

“요즘은 결정사도 나이 든 여자는 안 받아준다던데…”

“얘들아, 나 비혼주의인 거 잘 알잖니~”


친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으쓱한다. 그래, 네가 좋다면야… 혼자가 편하고 좋긴 해…


그런데 얘들아, 너네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거니. 아까는 내가 부럽다더니, 애는 낳지 말라더니, 비혼을 존중해 주는 듯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사려져 있었다. 난 나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나의 존재를 무시해 버린다. 왜 이들은 본인들과 다른 길을 걷는 나를 철부지로 보는 걸까. 그리고 난 또 왜 이들이 나보다 더 어른으로 보이는 걸까. 나의 무엇이 다르길래. 난 정말 모르겠지만 이거 하난 알 것 같다. 이젠 내 친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이번 글쓰기 글감 주제 「영 포티(Young Forty)」를 가지고 글을 써야만 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 되었다. 우리 모임 회원님들은 다들 하나 같이 흔한 소재로 글을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정된 이미지를 내뿜는 소재에 대해서 쓰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럴 때야말로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


처음에는 좋은 의미로 쓰이다가 퇴색되어 우스꽝스러운 비웃음, 놀림의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 비운의 단어. '젊게 산다는 것'을 물질적으로만 과다하게 채우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연관된 이미지를 찾다가 20년 적 반짝, 노처녀 대신 쓰인 단어 '골드미스(Gold Miss)'가 떠올랐다. 그리고 '비혼'을 결합하기. 최근 들어 유행처럼 주체성 높은 이미지로 쓰인 비혼이 다시 '탈비혼'으로 갈아탐 추세가 보이는 듯하다. 영 포티, 골드미스, 비혼. 나는 이 모든 게 유행 시기만 달랐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초단편소설이고, 블로그에 올렸을 때 가제는 '젊게 산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 적다는 것일까'라고 붙였었다. 단순히 마음에 드는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단상을 표현한 것이었고, 이번에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하게 되면서 최종 제목을 『책임 없는 쾌락』으로 결정하였다. (이쪽이 더 어울리지 않나요?)


초보 글쟁이가 글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유의어에 접근해 보는 방법도 좋은 듯하다. 자칫 잘 못 하다간 완전히 넘어갈 수 있어서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겠지만 처음부터 비틀고 꼬으려다가는 내 글도 꼬여버릴 수 있어 글쓰기 자체를 포기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조금 더 쉬운 길로 써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