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네 希望事項

사랑스러운 그대 [초단편 07]

by 연서글서


“자기, 오늘 영수 씨 네랑 약속이 몇 시라고 했더라?”

“네 시.”

“30분이면 가지? 오, 아직 여유롭네.”


주말 오후 두 시의 그녀는 아직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그녀가 이토록 느릿한 굼벵이의 화신일 줄 꿈에도 몰랐다. 연애 초기였다면 지금 시각의 그녀는 꾸미고 있느라 바빠 연락이 뜸할 때이다. 커플이 되고 동거한 지도 오래돼서 그런 것인지. 풋풋했던 20대가 지나갔기에 그런 것인지 그녀는 약속까지 남은 시간을 뽕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알차게 침대 위를 뒹굴며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안 씻어?”

“좀 따~”


머리를 긁적이던 그녀가 손톱 밑 냄새를 킁킁 맡더니 내게 뻗어온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정수리 냄새를 내 코에 묻힌다. 묵진한 기름진 두피냄새가 났다. 최소 이틀은 감지 않은 듯하다. 쿰쿰하게 퍼지는 냄새에 조심스레 손을 치우니 그녀는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냄새 많이 나?”

“응.”

“머리 감아야겠다...”

“머리는 매일 감아야지.”

“아~ 귀찮아~”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던지곤 그대로 뻗어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세 시가 되면 깨워달라며 입도 다물었다. 나는 찬찬히 그녀의 얼굴을 뜯어본다. 기름져 떡진 머리카락과 번들한 이마, 눈곱이 덜 떨어져 부스러기 가루가 붙은 눈가와 그중 가장 깨끗해 보이는 콧방울, 그리고 늘 빨갛게 예쁜 꽃물 들어 있었으나 지금은 밋밋하기만 한 입술까지. 옛 그녀를 떠올려보며 지금의 그녀의 얼굴에 얹어 본다.


“요즘엔 왜 화장 안 해?”


나의 질문에 잠깐 눈을 뜬 그녀는 귀찮음이 물씬 느껴지는 얼굴로 몸을 뒤집어 더욱 침대 속을 파고들어 갔다. 한참을 매트릭스에 파묻히던 그녀는 숨이 찼는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뾰료통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안 해도 예쁘니까?... 뭐야 그 표정은? 안 예쁘다는 거야?”


예쁘다는 소리에 수줍어하며 "아니야~ 화장발인걸" 하곤 쑥스럽게 웃던 풋풋한 그녀는 어디로 가고 뺀질뺀질하게 쉰내가 나도 당당한 아저씨 같은 그녀만 남았을까. 함께 첫 여행을 간 곳에서 밤을 함께 보냈던 그녀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일어나 씻고 화장을 했었다. 뒤늦게 부스럭대며 일어난 내게는 아직 이르니 더 자라며 열심히 머리를 말리고 분칠을 하던 그녀였다. 그러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안아주고 얼굴에 키스를 한다. 까르르 웃으며 저리 가라며, 화장이 지워진다던 그녀에게 나는 "민낯이 더 예뻐"라고 속닥거린다. 놀리지 말라 부끄러워 온몸으로 얼굴을 가리던 옛 그녀는 한없이 사랑스러웠었다. 그땐 정말 뽀얀 얼굴이 화장에 가려지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는데…


“예쁘지. 그래도 가끔은 20대 때의 너를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

“… 흥! 뽀뽀해 주면 일어날게!”

“… 일어나서 양치 먼저 해.”

“마음이 바뀌었어. 키스해 줘!”


지금 당장 키스를 해주지 않겠다면 오늘 약속 일정을 펑크 낼 것이라 귀여운 협박을 날리며 얼른 키스해 달라 떼쓰는 그녀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스럽긴 매한가지이다. 어떤 얼굴의 그녀일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앞으로도, 무척이나 나에게 사랑스러운 그녀로 남을 것이다.


“알겠어. 키스해 줄 테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 씻자.”




23년 12월의 모임 때 지금까지 써온 우리들의 글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모으면 분량이 꽤 되니 한 번 책으로 엮어 봄이 어떨지에 대하여 말이다.(아직도 한 번씩 말만 나올 뿐이라 나는 이렇게 따로 브런치에 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글감 주제가 정해졌다. 24년 새해 첫 시작의 글은 23년에 썼던 글 중 하나를 선택해 「퇴고」를 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써왔던 글 중 23년 11월 글감 주제 「화장」으로 쓴 시를 퇴고해 보았는데 색다르게 소설로 변환하는 작업을 걸쳐봤다. 원문의 시는 아래와 같다.



민낯이 예쁜 그녀는 오늘도 화장을 하네

꾸밈없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오늘도 화장을 하네


너는 왜 화장을 하니, 안 한 게 더 예뻐

나 화장 못 한다고 꼽준 거니

아니야, 그냥 넌 있는 그대로가 더 예뻐

아니야, 가려야지 예뻐


주름진 그녀는 오늘도 화장을 안 했네

물기 뚝뚝 흐르는 머리를 보니 오늘도 화장을 안 했네


너는 왜 화장을 안 하니, 예전엔 예뻤는데

나 지금 못났다고 꼽준 거니

아니야, 그냥 조금만 꾸며도 더 예쁠 텐데

아니야, 지금 그대로도 예뻐


화장으로 반짝반짝 해진 얼굴로

나이 먹고 뺀질뺀질 해진 성격으로

어떻게 꾸며도 어느 때나 그녀는 예쁘다네


다들 그녀에게 웃어주네



본질적인 퇴고와는 결이 다른 작업이었지만, 소설과 시 두 버전으로도 같은 내용의 다른 글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시험해 보았다. 소설과 시 중 어느 버전이 더 나은 지 모르겠지만(여러분의 선택은?) 한 가지 이야기를 변주해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작업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글쓰기 방법도 여러분께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