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B티풀 러L브의 세계

하다못해 여기까지… [에세이 15]

by 연서글서


좁았던 나의 미학이 세계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에 눈을 떴다. 30년여간 변함없이 잔잔했던 취향의 호수는 파동이 일어 파란 물결을 일으켰다. 그리고 드넓은 바다가 되었다. 이젠 나는 온갖 장르를 소화할 수 있게 된 몸이 되어 버렸다. 돌이킬 수가 없을 만큼. 장르의 확장이란 마음먹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닌 만큼 존재감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내 지갑도 폭행을 당해 너덜 해졌으니 말이다.


앞서 밝혔던 것과 같이 나는 만화책을 수집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만화책 수요층이 급격히 늘었다고 우리 만화 카페 회원님들의 증언이 있었다. 나는 조금 늦은 감이 있는 2023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수집을 시작하였다. 처음은 역시 순정만화였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은 주인공이 예쁜 여자아이의 순정만화 외에는 거의 보질 않았다. 홍은영 작가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 빼고 말이다. 나는 미학을 따지는 편이었으니까. 애니메이션은 투니버스 전성기 시대를 엄마의 아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드래곤볼, 원피스, 배틀짱, GTO, 등 소년만화도 많이 보았지만 본진은 역시 신의괴도 잔느, 환상게임, 다다다, 그리고 달빛천사를 본방으로 본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그런 내가 돈을 벌어 취미 활동에 마음껏 쓸 수 있는 20대 사회인이 되어 사들인 첫 만화책은 서문다미 작가님의 작품 《루어 RURE》였다. 한국 만화잡지 파티(Paty)의 대표 순정 판타지 로맨스 장편 만화 《루어 RURE》를 36권까지(지금은 41권까지 나왔다. 아직 연재 중이고 단행본이 죽어라 느리게 나온다.) N회차 반복해서 보다 옛 추억을 불러일으켜 2023년 말부터 일본 순정만화책도 구매해 보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책·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보았던 짬밥으로 재밌는 작품들만 쏙쏙 골라 보았지만 그 시절 어린 소녀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종이 남자친구를 만들어 설레게 되질 않게 되었다. 나는 그저 CP러, 즉 커플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만 팠을 때와 달리, 이제는 커플 자체를 덕질하게 되면서 지각이 변동되었다. 예전에는 극도로 혐오했던 장르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이제는 지상파 채널까지 입성하게 된 국내 BL 작품 《시맨틱 에러》를 알게 된 것이다. BL이란 Boy's Love의 준말로 남성들끼리의 사랑이야기를 말한다. 중학생 때 동방신기 팬이었던 같은 반 친구가 보여줬던 팬픽 소설로부터 BL이란 장르를 알게 되었지만 나는 꺼렸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친구들은 불법으로 다운로드한 일본 성인 BL 만화책을 보았지만 나는 꿋꿋했다. 그런 내가 지하의 세계에 있던 작품인 BL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자 궁금해진 것이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BL을 보는 것이지?


놀라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아름다운 사랑이었고 이것이 진정한 순애가 아닐까 싶어졌다. 무엇보다 한 앵글에 내 취향의 남성(캐릭터)이 둘이나 들어오는 장면들은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 나의 두 눈이 파랗게 물들었다. 정말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작품이 바로 BL이었다. 거칠고 모럴리스한 구애와 성애가 한가득. 예전 해적판과 수위의 등급이 느슨했을 때 내가 본 순정만화 작품들도 15세 이상 관람가는 지금의 19세 이상과 맞먹을 정도의 에로함이 있었다. 특히 일본 만화책이 유독 심했다. 피폐함 가득한 그런 요소들이 안방의 엄마들 막장 드라마에 빠지게 하듯 나를 도파민 중독에 빠지게 했는데 요즘에는 조정이 많이 되었는지 그런 맛이 많이 줄었던 것이다. 그런 맛을 BL에서는 대놓고 미는 콘텐츠가 되었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피폐한 취향에 맞춰진 BL 작품들을 침 흘리며 구매해 보게 되었다. 옛 고대 그리스 사람들을 보아라. 문학 작품의 장르의 시작은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극을 통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껴 예술을 즐기었다. BL은 시작부터 비극이다. 아무리 작품 속에서 남성들끼리의 사랑을 주변에서 응원도 하고 그런 절대적 세계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인식에는 여전히 동성들끼리의 사랑은 숨겨야 하는 마음껏 표현할 수 없는 음지의 세계이니 말이다. 그런 관념이 자리 잡은 시대의 동인은 금지된 사랑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브로맨스, 버디물, 등 주먹과 거친 언어 표현 혹은 멱살잡이가 오고 가는 야성적이고 멋진 남성들의 케미는 여성과의 조합으로는 볼 수가 없는 세계 속에서 BL을 보지 않는 독자들도 분명 낭만을 전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는 쌍방 과실이든 인생은 실전이든 경찰이 오고 가는 상황에 입가가 찢어지고 피와 땀이 맺혀 쓰러진 두 남성의 우격다짐 속 피어오르는 우정이라는 애정의 산물을 아름답게 보질 않겠는가. 나는 그것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깊이, 높이 들여다본 것이 BL 장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매력에 흠뻑 취했고 말이다.


이제는 안다. 어째서 갈수록 부녀자, 부남자들이 늘고 있고 음지의 작품들이 양지로 올라오게 되었는지 말이다. 시대가 자유로워질수록 작품들에는 많은 규제가 따른다. 옛적과 오늘날의 심의 규정이 달라진 것과 같이 말이다. 이젠 여성 캐릭터를 예전과 같은 범죄 수위의 이야기가 나오면 나 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것이고 욕할 것이다. 그것이 보편적인 것이니까. 그러나 남성 캐릭터로는 날것 그대로 들어낼수록 인간의 본능적 추구했던 낭만을 끌어올린다. 결론은 그것이다. 현실과 달리 작품은 받아들이는 모든 이성적인 끈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것. 크게 보면 예술의 세계와 같지 않을까 싶다. 윤리를 떠나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뷰티풀 한 러브의 세계에 양껏 취해있다. 올해는 드라마도 볼까 싶다. 만화책으로 보고 배꼽 잡아 웃었던 작품 《절대 BL이 되는 세계 VS 절대 BL이 되고 싶지 않은 남자》를 말이다. 실사화된 드라마 중 가장 보기 좋다고 들었는데 기대된다. 아, 또 하나 더 추천하자고 한다면 《미나토 상사 코인 세탁소》를 적극 추천한다. 이 또한 만화책으로만 보았지만 드라마도 인기가 많다. 순애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성인 BL 작품이 많아서 그렇지 청춘들의 흐르는 땀방울에 빛 도는 새파란 사랑은 여운이 한가득 한다.




세상에 나도 내가 BL에 빠질 줄은 몰랐으나 한 번 빠지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한 번은 BL에 대한 고찰적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쓴 에세이가 이번 글이다. 더 넣고 싶은 내용들도 많았지만 BL의 역사에 대해서까지 쭉쭉 풀기엔 시간도 없고 분량도 많아서 스킵했다. 각설하고 나의 본 심정만을 써보았다.


호불호가 갈리고 특히 꺼리는 남성들이 많은 주제에 대해서 쓴 글이기에 일부러 조금 더 유쾌하고 즐길 수 있도록 써보았는데 잘 써진(잘 읽히는) 글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BL을 보기 전 나였다면 이 글을 읽을까 싶기도 하지만 도전적인 글을 한 번 발행해 본다.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첨언되었기 때문에 약간 모험적일 수도 있겠으나 비판도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글을 씀에 고려해야 할 상황들을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말이다.


글을 쓰다 보면 물의를 빚을 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작가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드러내서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과하고 배워 고치고 더 성장하면 된다. 아주 아주 아주 커다란 명백한 잘 못만 아니면 무지함에 따른 생각의 차는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부분도 꺼내어 써보기로 했다. 타자의 잣대를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으로 이 글을 올려본다.

월, 화,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