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을 굽는 할머니

나의 베이킹 경험의 글쓰기 [에세이 19]

by 연서글서


― 난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아이들이 그 할머니 하면 "마들렌을 참 맛있게 구워주셨지!" 하곤 떠올리는 그런 할머니 말이야.


친구가 던진 장래 포부에 대한 단편적인 장면이 가끔 내 안에서 떠오른다.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던 그의 말이 인상 깊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며 나에게 물음을 남긴다. 그럼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걸까. 아직 많이 멀고 멀은 이야기 라지만 그날 이후 나는 누구라도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친구처럼 당차게 말하고 싶어 졌다.


코로나 시기 나의 취미에는 제과제빵이 있었다. 어느 학원의 원데이 클래스 강좌를 신청해 퇴근 후 원하는 레시피를 배우러 다녔다. 강의비가 비쌌지만 맛있는 레시피와 제빵 기술을 포인트만 쏙쏙 집어 배울 수 있다는 강점이 컸었다. 비싼 돈 주고 배운 레시피와 기술을 썩힐 순 없었다. 집에 없는 오븐과 장비, 재료들도 하나둘씩 채워갔다. 나도 얼추 마들렌을 '굽는' 할머니까지는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시기 나 또한 코로나 블루라고 할 수 있을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무기력하고 움직이기가 무척 힘들었다. 당시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데 막상 그만두면 뭘 해서 먹고살겠나 싶은 생각에 쉽게 퇴사를 결정할 수 없었다. 물경력의 떨어지는 자존감에 더욱 일은 하기 싫고 가망 없어 보이는 미래가 두려워 번아웃 증세로 커진 듯하다. 온갖 잡생각이 지배를 했을 때 나는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었고, 그 활동이 베이킹이 된 것이다. 엄마는 내가 회사를 그만 두면 카페를 차렸으면 하셨다. 나는 카페를 운영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직접 수제 디저트를 구워 파는 가게를 상상했다. 재밌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국비 지원을 받아 제과제빵 자격증 반으로 학원을 다닐까 알아보다 먼저 회사를 그만둔 친구가 자격증 반을 다니고 있었으며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을 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찾아보니 필기는 직접 공부를 하면 되었고 실기는 기술만 따로 배워도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왕이면 바로 맛있는 레시피의 디저트를 빠르게 습득하고 싶어 큰돈을 주고 원데이 클래스 강좌를 신청했던 것이다.


내가 다닌 학원의 원데이 클래스 강좌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한 달 올라온 스케줄표를 보고 원하는 레시피의 강의를 선택해 들을 수 있었다. 기간은 길어 나는 10회 강좌를 2달에 거쳐 다 썼었다. 처음에는 엄마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 포르투갈 에그 타르트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때 배운 레시피를 나는 가장 많이 써먹었다. 그리고 배웠던 레시피 중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디저트가 된 것이다.


흔히 심리학적으로 '베이킹 테라피(Baking Therapy)'가 있다. 정서적 안정과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심리학과 교정 시스템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며 촉감과 리듬감을 느끼고 오븐에서 빵이 익어갈 때 나는 고소한 냄새로 뇌의 편도체(정서를 담당하는 부위)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다림과 통제력의 학습으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도소 내 제빵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른 수감자들은 기다려야만 하는 인내심과 무질서했던 삶에 정교함을 줘 규율과 통제력을 심어줄 수 있어, 반사회적 성향 완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손을 거쳐 빵이 되는 가시적인 결과물은 성취감이라는 가장 강력한 교화 도구가 되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으며 느끼는 사회적 연결감이 큰 작업이 베이킹이다.


학원에서 배울 때는 언제나 새 팀이 짜인다. 신청하는 인원에 따라 팀 수가 결정 되어 그 팀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빵을 만드는 중간중간 작업을 함께 배우며 스몰 토크도 하고 손이 비는 사람은 재빨리 설거지도 해내며 팀워크를 다지기에 나는 회사 밖에서 또 다른 새로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베이킹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당시는 겨울이었지만 나는 땀을 뻘뻘 내며 빵을 구워야만 했다. 오븐의 온도도 그렇지만 반죽을 할 땐 정말 온몸을 사용해서 치대야 하기 때문이다. 배울 때는 다 함께 작업을 해 제시간에 완성을 했다지만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며 만들 때는 최소 4시간은 걸렸었다. 그토록 중노동인 작업이 베이킹인 것이다. 빵이 비싼 이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베이킹은 명상이 된다. 정확한 계량과 반죽을 하기 위해서 잡생각은 멈춰야 하고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강제적인 집중력을 동원한다. 그리고 반죽이 익어 갈 때, 빵이 구워질 때조차 틈은 생기지 않는다. 그 시간에는 설거지를 해가면서 오차 없도록 레시피 대로 작업을 해가야 하기에 계속해서 레시피를 살펴보며 빵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주홍빛 열길 속 오븐에서 굽히는 빵을 바라보는 시각과 고소한 냄새를 풍겨 코로 들어오는 후각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빵이 굽히는 시간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작용해 여유를 자아낸다. 다 굽힐 때쯤이면 강력한 버터냄새로 인해 느글해진 내가 먹기보다는 기다려준 타인의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맛있다!"라는 타인의 행복감이 전달되어 무너졌던 나의 자존감이 회복이 된다. 우울감과 번아웃에 찌든 나에게 베이킹은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켰다.


나는 마들렌을 굽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들렌을 맛있게 굽는 할머니는 되지 못한다. 아니다. 이후로 배우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베이킹을 통해 배운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함께 빵과 쿠키를 구워가며 아이들의 정서에 안정감을 주고 발달시켜줄 수 있는 그런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번 에세이는 경험의 글쓰기로 선택했다. 글감 주제는 「베이킹」이 되었다. 5년 전쯤의 일이어서 처음에는 기억이 날까 했었는데 내 속에 숨었던 경험을 끄집어 내니 글이 길게도 써졌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나의 경험을 되짚어 보는 일이 중요하다. 쓸 것이 없는데, 나는 특별한 경험이 없는데 하고는 글쓰기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해온 작은 경험들도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기억을 떠올리고 나만의 철학을 담아 글을 써보면 멋진 글이 탄생하게 된다. 나 또한 그렇게 글을 쓴다.


다음 주에는 오랜만에 오븐을 청소하고 버터떡을 구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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