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드디어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유명한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완독 하였다. 처음 우리나라에 원제로 들어왔을 때는 인기를 못 끌어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재출간을 하여 대박 난 작품이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안한 제목을 싫어하기도 하고 소문난 가게이기에 다시 원제로 팔리기 시작한 《노르웨이의 숲》. 동명의 제목이자, 핵심 등장인물 나오코가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 또한 『NORWEGIAN WOOD』이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두 제목 중 《노르웨이의 숲》이 더 좋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상실의 시대》는 보편적인 '모든' 청춘('등장인물'들이라거나 '우리'라거나)을 위한 번안된 제목 같아 보여 소설 본문의 내용이 오히려 희석됨을 나는 느꼈다. 원제 그대로 《노르웨이의 숲》은 '나오코'를 위해 바쳐진 제목으로 보인다. 나오코의 죽음과 와타나베의 방랑을 보고 레이코와 다시 쓸쓸하지 않은 버전의 장례식을 치르는 와타나베를 보면서 이 소설 끝에서 나는 '그렇구나, 나오코를 위해 쓰였구나'를 느꼈기 때문이다. 끝물에서 나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상실의 시대》는 소설을 읽어가며 '참 어울리게 잘 번안된 제목이네'라는 생각이 들어왔었지만, 결국 끝에 나는 나오코와 와타나베에 오직 몰입하고 싶었기에 그들이 옅어지는 제목이 별로가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비틀스 『NORWEGIAN WOOD』을 듣다 유튜브에서 서프라이즈 방송분을 발견했다. 비틀스 멤버인 조지 해리슨의 사무실 직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래 가사는 "Knowing She Would"라는 것이다. "그녀가 방을 보여줬고, 좋지 않은가 그녀가 뭘 하려는 지 안다는 건" 이 가사 내용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레코드 회사에 반대당했다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좀 야한, 외설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에 어울렸고, 나오코와의 하룻밤이 닮은 곡의 제목을 어떻게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어이, 기즈키, 나는 생각했다. 너하고는 달리 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것도 제대로 살기로 했거든. 너도 많이 괴로웠을 테지만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야. 정말이야. 이게 다 네가 나오코를 남겨 두고 죽어 버렸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아. 왜냐하면 난 그녀가 좋고 그녀보다는 내가 더 강하니까.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p.415)
미성숙한 아이는 언제나 불완전한 성년이 될 수밖에 없다. 어제는 미성년이었는데 오늘은 성년으로 바로 어떻게 탈피하나. 스물을 맞이한 나오코의 미지에 대한 불안한 두려움은 와타나베에게도 전염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또 다른 불완전한 이야기, 야자와 아이의 《NANA》라는 미완결 만화책이 생각났다. 불완전하고 불안한 청춘들의 불태운 죽음과 삶이.
불안과 두려움, 무거운 현생에 짓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편지에 담는 와타나베처럼 살아간다면 이 아픔도 과거가 되어 무사히 서른일곱을 맞이할 수 있음을,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비스킷 깡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모든 청춘들에게는 《상실의 시대》가 있음을 기억하기를.
❝ "인생이란 비스킷 깡통이라 생각하면 돼." … "비스킷 깡통에는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 (p.419)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발췌; 마음을 흔든 문장들!
❝ 반딧불이가 사라져 버린 다음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속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눈을 감으면, 그 작고 희미한 불빛은 짙은 어둠 속을 갈 곳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고 떠돌았다. 나는 어둠 속으로 몇 번이나 손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p.86)
❝ "고독한 게 좋아?"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p.96)
❝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공정'이라는 말이 아주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도 무엇이 아름다운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이 나에게는 너무 귀찮고 복잡한 명제라서 억지로 다른 기준으로 바꾸어 버린 걸 거야. 이를테면 공정한가 아닌가, 정직한가 아닌가, 보편적인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p.152)
❝ 첫째, 상대를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할 것. 그리고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 둘째, 정직할 것.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마음에 불편하다고 해서 적당히 얼버무리지 말 것. 그런 것만 명심하면 돼. (p.172~173)
❝ 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괴롭지만, 만일 네가 없었더라면 나의 도쿄 생활은 정말 엉망이 되어 버렸을 거야.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 너를 생각하기에, 자, 이제 태엽을 감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거지. 네가 거기서 열심히 살듯이 나도 여기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p.335)
❝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p.48)
❝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p.453~454)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은 20대가 읽고, 30대가 돌이켜보고, 40대가 다음 20대에게 이야기해 주기 좋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 드는 작품이다. 만약 여기가 독서모임 자리였다면 조목조목 많은 이야기들을 했을 텐데 여기서는 제목에 대한 이야기만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정말 나는 나오코 만이 남았고, 와타나베만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1독 후 바로 2독을 하고 싶어진 소설이라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바로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이상 『집책광공 사유독서』 여덟 번째 책,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 읽고 쓸 독서 리뷰는 이 장르의 소설 쓰기가 급 재밌어져서 이제는 읽어봐야겠다 싶어 꺼내든, SF 작가가 궁금해 구매해 본 에세이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 배명훈 《SF 작가입니다》로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라이킷, 팔로우 댓글도~ 모두 감사해요♡ 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