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죽음은 잿빛이다. 그러나 삶은, 강렬한 감각이다.
무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회색 빛깔이라면, 어떤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번아웃으로 심리적으로 어두웠던 시기, 나는 부정적인 생각의 루프에 빠져 있었다. 온 세상이 회색눈이 내려 뒤덮어버린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세상이 무미건조했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공포는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나 깊은 슬픔이 아니라 무력감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잿빛 같은 세계에서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이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공포를 증폭시켰다. 마치 아무리 기름을 섞어도 흐려지지 않는 꾸덕한 유화물감 같았다. 음식을 먹어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음악은 들어도 감정이 자극되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어떤 교훈이나 개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는 조언도 들리지 않았다. 다 귀찮고 희망도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왜 삶을 살아야 할까?
그리고 이 시기를 빠져나오게 된 것은 이 감각이 되살아나면서부터다. 창문을 열면 얼굴을 어루만지는 아침 공기, 압력밥솥에서 터져 나오는 쌀냄새가 섞인 뜨거운 수증기, 쌀쌀한 날 집에서 막 만든 뜨끈한 북엇국 한 스푼 등 작은 순간들이 하나씩 모여서 쌓이면서 마침내 감각들이 돌아왔다.
살아있는 것은 민감하게 세상을 감지하고 교류한다. 식물들은 민감하게 조도에 반응해 빛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인다. 원초적 세포들은 끊임없이 주변환경에 반응을 하면서 무엇이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아닌지 판단했다. 뇌라는 장기가 생겨나기 이전 그들은 신체 장기로서 세상을 감각했고 자신들의 생명에 유리한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들을 본능적으로 피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감각은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다. 감각에 반응한다면 생명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기분 좋은 감각을 느낄 때 그들은 살아있다고 느낀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좋은 감각을 느끼면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좋은 감각들은 사람의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예술품이나 건축물을 보면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 앞에 서거나 그 안에 들어가면 나는 어떠한 신비로운 힘에 사로잡히고 고양된다. 예술의 놀라운 기능 중에 하나는 감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마음에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다.
멋있고 세련되고 쿨한 글이나 작업이 아니라, 내 세포를 고양시키는 경험을 갈망한다. 내일도 모레도 더 건강하게 살아서 누리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하는 작품들을 원한다. 순수한 열정이 덕지덕지 칠해진 반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힘들고 지친 날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균형이 잘 잡힌 바흐의 곡을 들으며 우여곡절 삶이 원래 이런 거지 하면서 하루를 넘긴다. 내 삶을 지지해 주는 작업들을 난 사랑 한다. 그들의 사랑은 감각을 타고 나에게 잔잔히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