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멀어졌을까

생각

by 현 Hyun



도예용 흙냄새가 습기 찬 공기와 찰지게 반죽되어 만든 쾌쾌한 냄새를 맡으며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걸어 내려갈 때, 나는 조금 설렜었다. 더운 여름날이면 벽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놀라곤 했다. 계단을 내려가면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무거운 쇠문이 나온다. 손을 시리게 하는 손잡이를 손바닥 가득 잡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구석에 있는 물통에 고인 물감탄 물이 썩어가는 냄새. 칼에 갈린 연필냄새가 풍기는 쓰레기통 냄새. 말랑말랑 지우개에서 나는 고무냄새. 그리고 창문 없는 실내의 하얀 형광등.


스무 장 남짓이었던 스케치북이 한 장씩 장면들로 날이 갈수록 채워졌다. 하얀 페이지를 열어 그림을 시작하면 분주한 노동으로 시간을 잊어버렸다. 나에게만 보이는 세계를 하나씩 그려서 펼쳐나갈 때의 쾌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미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다. 난 창작자로서 벽에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작업실을 구했다. 하지만 작업실 열쇠를 집어 들었지만 곧 다시 놓아주는 걸 몇 번째, 그렇게 작업실은 몇 달째 텅 비어 있었다.


이런 시간 동안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큰 마음이 아니었다. 재미로 쓸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었다. 돌아보면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든 그만둘 수도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사이였다. 10년의 타지생활에서 글쓰기는 외로울 때 내가 달려가면 언제나 받아주는 공간이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미술과는 어려운 관계가 되었던 걸까?




어렸을 적에 대가족이었던 복닥 복닥하고 시끄러운 집에서 나는 가끔 숨이 막혔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에 집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가족들의 걱정 없이 장시간 밖에서 있을 수 있는 곳은 미술학원이 유일했다. 그래서 미술학원은 소란스러운 집에서 달아나기 위한 나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무엇보다 학원은 조용했는데, 모두가 입을 다물고 손을 놀리며 그림에 집중하지만 그 고요함이 큰 소리로 울려 퍼지며 묘하게 합쳐졌다.


그러나 학교 입시가 시작되었고 유학을 위해 밤새워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만 했다. 회사에서는 해야 하는 일들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작업을 마감해야 했다. 직업으로 비자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술은 내 마음 심해에 거대한 추 가되어 어둠으로 계속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응답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0도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