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미술과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땅에 드리워져 있었다. 발등만치 왔나 싶었더니 어느덧 발목으로 그리고 종아리를 지나 무릎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내가 미술에게 지워준 무게는 얼마나 되었을까. 수단으로 생각했던 미술에서 순수가 차지한 자리는 얼마였을까. 깊은 숲을 품은 프랑크프루트 중앙 공동묘지의 한 자리만큼은 되었을까.
내가 돌아갈 마음의 안식처가 없어진다는 끔찍한 생각을 해보았다. 1인 분의 라면 끓는 물의 수증기가 모조리 응고하여 주방의 바닥에 떨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중학생 오빠가 가출을 하고, 친할머니와 큰엄마가 크게 다투셨으며 엄마는 등을 보이시고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계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집에서 조용히 나와 미술로 숨어 들어갔다. 햇볕에 바싹 잘 말린 침구 위에서 부드러운 온기의 냄새를 맡을 때처럼 나는 내 숨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산소호흡기 같았던 미술을 심해에 두고 오지는 못하겠다.
미술 앞에서 나는 짙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이 눈물은 무지개 보다 많은 색을 품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미안했다. 엄마는 내 감정보다 내가 미술로 건져 올린 성취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나는 그때 화가 났다. 나는 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난 예술로 세속적 성공을 지향하는 친구들을 비난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화를 냈다.
좋아하지 않았던 순간에 좋아한다고 말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는 내 손끝에 닿을 자리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울지 말아야 할 순간에 울었고 울어야 할 순간에 웃었던 것 같은 어긋난 상황들이 기억이 난다.
내 눈물이 닿은 수건이 점점 무거워진다. 부드러운 휴지가 물에 젖어 겨울비 맞은 낙엽처럼 차가운 땅에 떨어진다.
Cover image ⓒ Hyunjung Choi,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