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작업실

장면

by 현 Hyun



"이번 겨울은 춥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웠어." 나는 벽이 새하얀 조소실에 있었다. 기억자 벽이 창으로 되어 있어 빛이 충만하게 들어왔다. 방의 가운데에는 책상 두 개를 마주 보게 붙인 작업대가 있었고 벽에는 쇠로 된 선반들과 케비넷이 서있었다. 작업대와 선반 사이 공간은 한 사람이 편히 들락 나날락 할 정도였다. 작업대 밑에는 세숫대야나 포대자루처럼 부피가 큰 물건들이 때가 낀 검은 비닐로 덮여 있었다. 작업대에 앉으면 발에 비닐이 발에 걸렸다. 선반 위에는 조각도라든가 고무망치 같은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창을 마주 보고 있었지만 빛이 눈을 찌르지는 않았다. 나는 작업대에 기대고 서서 한 손으로 검정 고무그릇의 바닥을 잡고 돌렸다. 동시에 식기용 쇠 나이프로 석고가루를 물에 개는 중이었다.


곱슬한 흰 단발머리의 독일인 선생님은 석고상처럼 반듯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그날도 남색의 체크무늬 난방에 청바지 그리고 검정 압치마를 두르고 계셨다. 검정 앞치마에는 불에 탄 작은 구멍도 보이고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었다. 팔에는 남색 비닐 토시를 끼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한 뒤 천천히 설명을 해주시고는 했다. 그녀는 창밖을 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쨍한 햇볕이 비출 때 참 좋지."




석고가루는 곱고 가벼웠다. 가루가 물을 빨아들여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보글거리며 방울을 내뿜었다. 물은 곧 탁해지다가 잘 저어주니 가루와 하나가 되었다. 석고는 살짝 푸른 기가 도는 흰색이었다. 액체의 석고는 여기저기 잘 붙기도 했다. 그리고 빠르지는 않지만 서서히 굳어갔다. 그때 표면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 축축한 표면에서 미묘한 열감이 느껴졌다. 석고 냄새는 왠지 새하얀 도화지 같이 새것의 느낌을 상기시킨다. 표면부터 점점 말라가는데 하룻밤 정도 지나면 석고의 표면은 거칠고 쉽게 바스러질 정도로 굳었다. 바늘로도 긁힐정도로 물렀다.


겨울방학이 끝난 직후라 학생들은 아직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외곽에 위치한 작업실 건물에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다. 길고양이만 어슬렁 거린다. 날이 한 참이 지난 전시를 안내하는 포스터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원색의 빨강, 파랑, 노랑 스프레이 낙서로 뒤덮인 복도의 공기는 바닥으로 침잠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 발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그리고 자전거를 세우는 곳에는 낙엽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미술에게 지워준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