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맛-2]
그 맛은 미각보다 시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어른들이 그늘에 앉아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내며 벌컥벌컥 들이켜던 그 무엇. 입가로 줄줄 흘러내리면서도 하나같이 입에선 '캬아~'라는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탁한 콩물 같으면서도 쌀뜨물처럼 텁텁한 빛깔은 아직 솜털이 남아있는 내게 신비로운 마실 거리로 다가왔다. 색깔과 먹는 모습만으로도 막걸리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어른들은 물보다 막걸리를 더 많이 드셨다. 일할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막걸리는 필수였다. 자연스레 막걸리 심부름을 많이 했다.
커다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꽤 먼 거리에 있는 가게에서 막걸리를 받아 왔다. 한 주전자 가득 채워 오는 데 가끔 문제가 생겼다. 동네 형들이 보는 사람 없는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한 모금씩 빼앗아 마셨다.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난처한 상황인데 형들은 친절하게도 표나지 않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줄어든 만큼 개울물을 타서 양을 맞추게 했다. 어른들은 환한 얼굴로 막걸리를 받아 드시곤 고개를 갸웃하시며 한 말씀씩 하셨다. "오늘 막걸리는 어찌 맛이 싱겁네." "꼭 물 탄 거 같아." 그럴 땐 잽싸게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어린 나이에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순진한 믿음 때문에 막걸리는 오랜 시간 그림의 떡이었다. 한잔 권해주는 어른들도 없었다. 성인이 돼서 처음으로 마신 술은 당연히 막걸리였다. 찌그러진 양은 잔에 파전을 앞에 놓고 성배를 들듯 마셨다.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예전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캬아~'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았다. 막걸리는 낭만이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많이 즐길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절감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한 선천적 결함은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다. 술은 노력한다고 잘 마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술은 못 먹어도 막걸리는 여전히 마음속 걸쭉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일흔을 훌쩍 넘기신 최 선생님은 딸만 여섯인 명문가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셋, 아래로 여동생 셋. 귀한 아들이었다.
할머니, 아버지와 한상에서 밥을 먹었다. 식사 때마다 집에서 직접 만든 술이 반주로 올라왔다.
7살 무렵, 아버지께서 "너도 한잔 마셔봐라"라며 막걸리를 권하셨다. 그때부터 최 선생님과 막걸리의 운명적 동행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심부름으로 일꾼들 막걸리 배달을 자주 다녔다. 막걸리를 받아 든 일꾼들은 의식을 치르듯 땅에다 고루 뿌리고 나서 마셨다. 땅의 신에게 먼저 신고를 한 것이다. 일꾼들은 장난삼아 꼬마 주인도 한잔 마셔 보라며 권했다. 최 선생님은 넙죽 받아 단숨에 마셨는데 "야! 술맛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와 일꾼들이 박장대소했다.
중학교는 도시에서 다녔다. 고등학생인 누나와 자취를 했다. 학교를 다녀온 어느 날 갈증이 심해 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목이 더 탔다. 그때 생각난 게 막걸리였다. 어쩔 수 없이 누나에게 막걸리 좀 사달라고 졸랐다가 엄청 혼났다. 마침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자취방에 들러 저녁을 함께 드셨다. 아버지는 누나에게 막걸리를 사 오라고 했다. 반주로 드시면서 "너도 한잔 마셔라"라며 따라 주셨다. 결정적인 순간 맛본 인생 최고의 막걸리였다.
대학생이 되고선 막걸리를 마음 놓고 마실 수 있어 좋았다. 밥을 먹듯이 막걸리를 마시며 청춘을 불살랐다.
막걸리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물리지 않았다. 한창때는 한자리에서 반말(10리터)은 거뜬히 마셨다. 밤새워 막걸리만 마신 날도 부지기수. 선생님에게 막걸리는 삶의 활력소였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대폿집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반은 누그러지고 한 잔 쭈욱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졌다.
선생님은 사범대학 졸업 후 거의 모든 기간을 지역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다. 수많은 제자들을 두셨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인물과 사건, 사고는 물론 세상사 거의 모든 일을 꿰뚫고 계신다.
당연히 지역의 양조장은 물론 막걸리의 내력에 대해서도 통달하셨다. 예전에는 각 면 단위마다 양조장이 있었다. 하나같이 맛이 달랐다. 선생님은 눈을 감고 한 모금만 마셔도 어느 양조장에서 생산된 막걸리인지 정확하게 맞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요즘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읍내 양조장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거듭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반갑고 즐겁다.
막걸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은 그지없이 순박하고 행복해 보인다.
'탁한 술을 먹고도 마음을 맑게 유지하는 게 진짜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의 미덕'이라는 게 선생님의 막걸리 예찬론이다. 선생님은 각 나라의 전통술은 부러워하고 좋아하면서 우리 술인 막걸리를 무시하는 게 못마땅하시다며 목소리도 높이셨다. 공교롭게도 소주를 즐기던 친구들이 먼저 떠났다는 안타까움도 막걸리 한잔에 담아내셨다.
돌아보면 참 긴 세월 동안 막걸리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막걸리가 있어 삶이 팍팍하지 않았다. 인생을 넉넉하게 살았다고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술이었다.
선생님은 지난겨울부터 숨이 차서 막걸리를 줄였다고... 이제는 막걸리를 먹는 즐거움 보다 자제하는 즐거움이 크다며 여전히 호탕한 웃음을 지으신다.
막걸리 한 잔에 곁들여 구수하게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옛이야기는 그 자체로 문화재요, 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