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맛-4]
팥이 들어간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
계절과 관계없이 가장 즐기는 식재료다. 단단하고 암팡진 모양새도 좋다. 적포도주 같은 색깔도 마음에 들어 옷과 소품 중에 비슷한 색상이 많다. 팥은 마술을 부리듯 다양한 형태로 조합되어 다가온다. 겉에 묻혀도, 속에 숨어들어도, 으깨져 한데 버무려져도 제 몫을 다하는 팥이 좋다. 팥의 효능과 부작용은 중요하지 않다. 오랜 시간 팥이 들어간 음식들을 무수히 섭취하면서 적어도 내게는 아무 이상 없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고 속이 쓰리거나 아프지 않았다. 팥은 내 몸과 마음에 최적화된 재료다.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셨다. 마을에 잔치가 있을 때면 그 솜씨는 더욱 빛났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어머니는 음식을 맛깔나게 만드셨다. 요리하시는 모습도 경건했다. 그런 어머니가 끓여주신 팥 칼국수는 특별했다. 한솥 가득 끓여 놓으시면 몇 날 며칠을 팥칼국수만 먹었다. 지금은 잊힌 풍습이지만 어릴 적만 해도 음력 7월 15일인 백중절은 명절이었다. 그날이 되면 마을에서는 찐빵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발효해 놓은 밀가루 반죽에 삶아 놓은 팥을 가득 넣고 무쇠솥에 쪄서 만들어 주신 찐빵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대나무 소반 위에 올려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찐빵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백중절이 한가위만큼이나 좋았다. 찹쌀에 팥을 넣고 지은 찰밥도 일품이었다. 팥을 좋아하게 된 건 어머니의 뛰어난 음식 솜씨와 타고난 식성의 조합인 듯하다.
어릴 적 외가에 자주 놀러 갔다. 기차를 타고 가면 꽤 긴 터널을 통과했다. 우리나라에서 두세 번째로 긴 터널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기차가 터널 속을 달리는 순간의 안팎 풍경과 소음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터널만 지나면 외가가 있는 시골 간이역에 금방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갈 때도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 재를 넘어 느리게 갔다. 힘겹게 오르내리는 차를 타고 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외가에서 하룻밤을 보낸 어느 날, 외할머니는 오전 내내 부엌에서 밥을 하고 계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점심을 먹지 않고 집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외할머니께서는 오곡밥을 하고 있으니 기다렸다가 먹고 가라고 하셨다. 팥을 좋아하는 외손자를 위해 노구를 이끌고 불을 때가며 무쇠솥에 오곡밥을 지으셨다. 철없이 괜한 고집을 잘 부렸던 나는 그냥 가겠다고 우겼고 외할머니는 한 숟갈이라고 먹고 가라며 간곡하게 말씀하셨다. 난 할머니의 간절함을 뒤로한 채 오곡밥을 먹지 않고 집으로 와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어머니께서 “외할머니가 너 팥 좋아한다고 애써 오곡밥을 했는데, 먹지 않고 가버려서 많이 서운해 하셨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좋아하는 것을 먹이고 싶어 정성 들여 밥을 하셨는데 매몰차게 가버린 손자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지금도 주걱을 든 채 부엌 문 앞에 서 계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딸이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아빠를 부르며 허겁지겁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기 바쁘게 뭔가를 급히 꺼냈다. 팥빵이었다. 한입 베어 문 상태였다. 간식으로 나온 빵이었는 데 먹고 보니 팥이 들어 있어 아빠 드리려고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싶었을 텐데 그걸 참고 팥을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하며 가져온 빵이었다. 어린 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뭉클했다. 딸을 꼬옥 안아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빵이었다.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 서울로 간 딸은 여전히 팥이 들어간 먹거리를 볼 때마다 아빠 생각난다며 전화를 하고 사진도 찍어 보낸다.
서울 강남에서 근무할 때다. 큰 대로를 사이에 두고 어릴 적부터 각별한 친구의 회사도 있었다.
우리는 수시로 만나 점심을 함께 먹었다. 친구가 추천하는 메뉴는 양은 냄비에 끓여져 나온 생태탕이었다. 언제나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맛집이었다. 근처에 맛있는 팥칼국수집도 있었다. 나는 자주 팥칼국수를 먹자고 했다. 늘 흔쾌히 따라 주어 맛있게 먹었다. 귀농을 하면서 그 친구와의 편안하고 즐거웠던 점심시간도 막을 내렸다.
서울을 떠나 시골에 정착한 내게 친구가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서울에 있을 때 함께 먹었던 팥칼국수가 자주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친구는 살며시 미소지으며 바라보더니 “사실 난 팥칼국수 안 좋아했어.” 순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를 위해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색하지 않고 함께 먹어준 친구. 그런 친구를 가졌다는 사실이 삶을 충만하게 했다.
얼마 전 그 친구가 많이 아팠다. 지금은 회복 되었지만 예전만큼의 건강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친구는 사과를 좋아한다. 이곳은 대추가 특산품이지만 사과 또한 명품이다. 해마다 사과를 보내 주는 걸로 친구를 향한 나의 마음을 대신한다.
인근에 조선 제일의 팥빙수 가게가 있다. 엄청난 행운이다. 팥빙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5월부터 내 마음은 온통 그곳으로 향해 있다. 기회만 되면 들러 팥빙수를 먹는다. 팥이 듬뿍 담긴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솟아난다. 아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팥빙수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꼭 포장을 해 온다. 아들의 마음 씀에 팥빙수 맛은 곱절이 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팥을 삶고 있었다. 팥칼국수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번갈아 찾아 들었지만 푸짐하고 진하게 내놓은 팥칼국수 맛에 푹 빠져 정신없이 먹었다.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며 아내는 웃으며 물었다. “팥이 그렇게 좋아?”
난 팥이 무조건 좋다. 팥이 들어간 모든 음식이 좋다. 몸과 마음이 받아들여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