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문자로 날아와 별이 된 친구들

<가버린 친구들에게 바침>

by 최담

낯선 문자가 두렵다. 스팸이나 보이스 피싱은 정신 똑바로 차리면 바로 구분이 된다. 불현듯 날아든 문자나 카톡. 다른 사람이 보낸 문자가 본인의 이름으로 온다. 해마다 그 문자를 받는 횟수가 늘어난다. 받기 싫고 열어보기 주저되는 알림. 얼마 전 또 그 문자가 왔다.


오래전이다. 지금은 사라진 남녀 공학의 시골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조그만 면 단위에 학생 수가 많아 처음 중학교가 생겼다. 지역의 구석구석 4개 초등학교에서 모여든 아이들은 너나없이 잘 어울렸다. 촌놈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가까워지는 것도 빨랐다. 잴 것도 없고 뻐길 것도 없는 순수와 낭만이 편견과 차별의 벽과 선을 없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에 2학년까지 교복을 입고 다녔다. 이어 시행된 두발과 교복 자율화는 마음의 자유까지 선물했다. 촌놈들의 끼와 순정은 질풍노도의 시기와 맞물려 날개를 달았다. 아직 평준화가 안된 고교 진학을 위해 야간자율학습도 있었지만 일부의 통과의례였다.

잘난 친구들은 마냥 즐거웠다. 청춘의 출발선에서 내달림에 유쾌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 중심에 그 친구가 있었다.

남학생들의 교실에서 그 친구의 이름은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보다 더 자주 불렸다. 어느 덩치 크고 쾌활한 친구가 많이 좋아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친구를 소환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친숙한 이름이었던 "춘자!" 춘자는 예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춘자는 변함없이 활달한 친구였다. 모든 일에 거침이 없었다. 씩씩하기는 남자와 같았다. 한결같음이란 그 친구의 태도와 성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만나면 스스럼없는 어깨동무로 반가움의 절정을 표현했다. "야 이놈아!"는 그 친구가 부르는 친숙함의 대명사였다. 늘 웃는 얼굴의 친구는 주위를 활력 넘치게 했다. 춘자는 춤추는 걸 좋아했다. 춘자의 춤은 나이 들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춤은 춘자에게 삶의 위로이며 에너지였다.


그런데, 얼마 전 낯선 이름으로부터 춘자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스팸이라 믿고 싶었다. 친구들도 춘자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열하는 친구, 벽을 치며 소리 지르는 친구, 꺼억꺼억 속울음을 삼키는 친구, 너무 허망해 헛웃음을 날리는 친구,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는 친구 등등 제각각의 깊이와 추억으로 장례식장은 소란스러웠다. 가까운 시간에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충격은 더 컸다.

서둘러 갈려고 그렇게 열심히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유쾌하게 놀아줬나 보다.


창식이는 친구들의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바른 친구였다. 중학교 때는 얼마나 빠른지 육상 대표로 뽑혀 각종 대회에 출전했다. 까무잡잡했지만 다부진 친구의 모습은 건강미 그 자체였다. 그랬던 친구에게 뜻하지 않는 병마가 찾아왔다. 자신의 아픔을 내색하거나 보여주지 않는 꿋꿋한 모습에 만나면서도 그 상태를 짐작할 수 없었다. 창식이는 남의 대소사에도 자신의 진정을 담아 표현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친구는 아마 자신의 머지않는 시간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고 싶었나 보다.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잠시 잊고 있던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제목, <부고>" 창식이의 죽음을 알리는 문자였다. 창식이는 작년 이맘때 떠났다.


참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수 십 년의 세월을 건너 언제 어디서든 걸림 없이 만났다. 서로가 서로를 추억하며 왁자지껄 어울렸다. 그중 모임에 유독 열심인 두 친구가 춘자와 창식이었다.


맑고 깊은 겨울밤, 마당에 나가 차가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독 반짝이는 별들이 있다. 그 별들이 내게로 다가온 시간의 거리를 가늠하지 않았다. 너무 짧은 시간 두 별은 그곳에 나타났다. 말을 건넸다. 나는 읊조림으로 별들은 깜빡임으로 응답한다.

창식이는 손짓하고 웃으며 달려오고, 춘자는 덩실덩실 춤추며 다가온다. 별들의 반짝임이 두 눈에 번졌다.

다음번 낯선 문자는 조금 천천히, 아주 느리게, 별이 반짝임으로 보인 시간만큼 길게 오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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