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향한다. 한적한 시골이라 차가 정체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디를 가든 제한 속도에 따라 늦어질 뿐이다. 신호는 상황에 맞춰 설치돼 있다. 신호가 있다는 것은 자동차와 사람의 왕래가 많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양보해야 할 곳에 신호등이 있다. 신호등은 서로가 지켜야 할 가장 확실한 약속이고 믿음이다.
마음은 늘 막힘없이 달리고 싶다. 멀리서 푸른 신호등만 봐도 반갑고 들뜬다. 그런 마음도 잠시, 신호등은 잠깐 사이에 노란 신호등에서 빨간 신호등으로 바뀐다. 언제부턴가 그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빨간 신호등이 말해 주는 의미를 알게 되면서부터 느긋하게 마주한다. 한결 여유 있게 멈춘다.
신호등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맞춰서 가라고 말한다. 어차피 가는 길,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없으니 여유를 찾으라 한다. 늦으면 늦은 대로 이유가 있으니 조바심 내지 말라 한다. 내가 멈춰야 다른 사람도 갈 수 있다고 일러준다. 그렇다. 내게 빨간 신호등은 누군가에게는 푸른 신호등이다. 서로 주고받으며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고 바른길임을 가르쳐 준다. 빨간 신호등의 시간은 길지 않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떠올린 생각의 시간은 길고 번뜩인다.
몸과 마음에 켜지는 신호등도 잘 관찰하고 판단해야 한다. 푸른 신호등만 켜지는 시간과 경우는 없다. 분명 노란 신호등과 빨간 신호등이 번갈아 켜지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아 잘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몸과 마음이 따로 보내는 신호다.
한때는 몸 가는 대로 마음도 따라와 주었다. 몸에 푸른 신호등이 길게 켜져 있었다.
점점 푸른 신호등의 시간은 줄어들고 노란 신호등이 잠깐 켜지다가 곧장 빨간 신호등이 들어왔다.
이제는 푸른 신호등의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노란 신호등의 시간이 길어졌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좀처럼 바뀔 줄 모른다. 마음을 앞지르는 몸이 화근이다. 일을 할 때나 운동을 할 때도 몸과 마음의 신호등을 잘 살펴야 한다.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신호가 전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파악해야 한다. 멈추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빨간 신호등의 시간이 줄어든다. 몸에 푸른 신호등이 깜빡 거리는 짧은 시간도 그저 감사하다.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술술 잘 풀린다고 좋은 게 아니다. 신호가 켜짐을 감지해야 한다. 거침없이 질주하게 만드는 푸른 신호등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잠깐의 노란 신호등은 더 보기 힘들다. 모든 일에 빨간 신호등은 예고 없이 찾아든다. 한 박자 쉬고 돌아보며 가라는 뜻이다. 너무 급하게 가지 말고 차근차근 다지며 차고 차곡 쌓아 가라는 가르침의 신호다. 일하면서 마주하는 빨간 신호등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충고요, 교훈이다.
마음이 힘들 때 켜지는 노란 신호등과 빨간 신호등도 고맙다. 마음을 다독이며 살피라는 신호다. 눈을 감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 보란다. 흐르는 물을 보며 마음을 떠나보내라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눈 질끈 감고 숨 한번 깊게 들이쉬고 힘차게 기합을 넣으라 한다. 잠시만, 잠시만, 심호흡을 하고 무념무상의 시간 속에 머무르라 한다.
마음의 푸른 신호등은 노력으로 켜진다.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의 마음, 겸손과 배려, 침묵과 경청, 비움과 채움의 조화, 낮고 작은 것들과의 친밀함, 느리고 흔들리는 것들에 손 내밀며 마음의 평온과 꽉 찬 즐거움을 지켜 나가야 한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느 곳, 어느 때나 빨간 신호등은 켜진다. 삶의 곳곳에도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꺼지길 반복했다. 빨간 신호등은 나를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닌 시간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선물이다. 반드시 다시 켜질 푸른 신호등을 위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해주는 빨간 신호등 앞에 나는 늘 주저 없이 멈춘다. 빨간 신호등은 청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