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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Dec 07. 2023

14년 만의 가장 긴 외출! <2>

모두들 소중한 인연으로

몇 년 전 지인의 초대로 아들과 모터쇼를 보러 왔던 킨텍스에서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자동차를 좋아했던 아들의 호기심과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서울과 지역 곳곳에 있는 종합 전시장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전시회 및 박람회가 많이 열린다. 주로 참관을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이번엔 박람회장을 찾는 분들에게 홍보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참가했다.


충북, 충남 교육청이 한 부스를 운영한다. 체험할 수 있는 종류는 4가지다. 무드등과 치즈 만들기, 곤충을 이용한 체험과 우리가 준비한 '달걀 꾸러미 꾸미기'다. 


처음 뵌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자고 의기 투합했다. 그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신기한 인연이고 놀라운 일이라고.

그렇다. 살아가는 데 있어 주어지는 큰 기쁨과 의미 중에 하나가 인연이다.  어느 순간, 어느 곳,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의 뜻하지 않는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신비롭고 가치 있다. 

4일 동안 부스를 찾아 올 많은 체험객들과 박람회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모든 분들과의 인연을 값지게 받아들이리라 다짐한다.


91세 어르신이 체험하러 오셨다. 걸음걸이가 꼿꼿하고 당당하셨다. 달걀을 좋아하신다며 꾸러미를 두 개 꾸미셨다. 꾸러미에 두 가지 마음을 담으셨다. '사랑한다', '건강하길 바란다'라고 멋진 필체로 쓰셨다. 어르신의 건강을 기원드린다.  

아저씨 한 분이 찾아오셨다. 닭과 오리를 좋아해서 키우고 싶은데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지금은 마음만 있다고 하셨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거실에서 오리를 몇 마리 키웠는데 시끄럽고 관리가 안돼 그만두셨단다. 시골집 마당도 아닌 아파트 거실에서 오리를 키우는 분은 처음 봤다. 


직장 동료로 보이는 여성분 셋이 왔다. 닭이 먹는 모이를 보면서 마냥 신기해했다. 재기 발랄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통통 튀면서도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서로를 많이 아끼는 듯했다. 꾸러미를 예쁘게 꾸며 사진에 담았다. 밝고 활기찬 분들로 인해 덩달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사이좋은 남매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며 모이 알아보기를 하고 꾸러미 꾸미기에도 진심이었다. 오래전 아들, 딸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다섯 살, 세 살 때 아파트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냈는 데 동생이 걱정된 오빠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동생이 있는 방을 들락날락 거리며 살폈다. 동생을 생각하는 다섯 살 오빠의 마음이 애틋했다.


점심은 혼밥이다. 킨텍스 1층에 있는 돈가스 집에서 먹었다. 식당은 넓었으나 단체로 관람온 초등학생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을 챙기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든든했다.


달걀 꾸러미 꾸미기의 의미는 고마운 달걀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가져가는 것이다. 생신을 맞이 한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더 예쁘다.


모두들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 소망을 마음껏 표현한다. 작은 공간이지만 부족하지 않다. 사랑이나 기쁨, 행복을 표현하는 것도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저녁은 의정부에 있는 처가에서 먹었다. 숙박비가 나오긴 했지만 장모님과 함께 보내고 싶어 3일간 머물기로 했다.  92세이신 장모님은 여전히 건강하시고 기억력도 최고다. 젊었을 적 말 못 할 고생을 감내하시며 키워낸 7남매가 모두 효자, 효녀다. 나이 들어 호강한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세상 모진 풍파를 견뎌내신 장모님께는 당연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좋아하시는 감자탕을 포장해 갔다. 막내 처남이 함께 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위는 물 한잔으로, 장모님과 처남은 소주 한잔으로 건배를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만찬이 푸짐하고 따뜻했다.


둘째 날도 혹시 몰라 일찍 출발했다. 40분 거리의 순환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이른 시간 주차장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늘 주차복이 많음을 증명하며 자랑하고 다니는 데 넓은 주차장에 혼자 주차하는 기분도 괜찮았다. 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박람회장에 들어섰다. 여유 있게 물품들을 진열한 뒤 다이어리를 정리했다. 이른 시간은 늘 여유와 충만함을 안겨준다.


학교 선생님 네 분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체험시간 내내 전해졌다. 분위기도 차분하고 밝았다. 꾸러미도 정말 예쁘고 개성 있게 꾸몄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꾸러미다.


점심은 마음이 잘 통하는 후배가 찾아와 곰탕을 먹었다. 프로야구 LG의 광팬인 후배는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평생 운을 LG의 우승을 위해 써 버렸다며 투덜대면서도 싱글 벙글이다. 모든 것에 진심이고 최선을 다하는 후배가 멋지다.


바로 옆 부스에 싸이먼이라는 이름의 반려견이 함께 했다. 똑똑하고 온순한 골든 리트리버다. 몸짓의 크기와 긴 털이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삽살개 '산'이를 떠올리게 했다.


결혼 50주년을 맞이하신 두 분이 오셨다. 다정하고 배려 깊은 두 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의 수줍은 듯 환한 미소가 아버지의 마음에 닿아 오손 도손 50년의 세월을 살아오신 듯 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시면서도 손을 꼭 잡고 계셨다. 두 분의 백년해로와 건강을 기원드린다.


모이 알아보기는 모두가 신기해한다. 닭이 먹는 10가지 기본 재료의 이름을 찾아 막대로 꽂아 보는 것이다. 닭이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각 모이의 특징들을 알려주면 또 한 번 놀란다.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닭이 먹는 것이 달걀이 된다. 좋은 달걀을 위해 최고의 재료들을 배합하여 먹이는 것이다.


주말엔 아내가 합류했다. 아내는 어느 상황, 어느 곳에서도 늘 천군만마와 같다.


어린 친구들이 연필을 바르게 잡고 꾸러미를 꾸미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제대로 연필 잡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희귀한 광경을 목격하고 기쁘고 기특한 마음에 사진으로 남겼다. 부모님들께 폭풍 칭찬을 해드렸다.


달걀 꾸러미 꾸미기를 하면 대부분 샘플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거나 응용해서 그린다. 5~6세 정도의 어린 친구들은 모두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꼬마숙녀들의 그림 속 색깔엔 모두 분홍색이 들어간다.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들이다. 그대로 쭈욱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자신들 만의 세상을 열어 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4일간의 박람회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많은 분들의 수고와 희생이 함께 했다. 다 드리진 못했지만 오며 가며 만난 관계자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생달걀을 드렸다. 톡 깨서 드시며 활력을 찾으시고 환한 미소로 화답해 주셨다. 


휴가 같은 4일의 시간이 많은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과 사연을 만들어 주었다. 스쳐 지나가는 이름도 모르는 인연일지라도 만날 수 있었던 그 순간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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