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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Dec 04. 2023

14년 만의 가장 긴 외출! <1>

가장 이른 시간, 꽤 멀리, 가장 오래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다. 뜻밖의 전화로 마주한 일정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삶이란 일정한 반복과 예측불허의 변수가 결합되어 펼쳐지는 무대이다. 하찮게 여겨진다 해도 매일의 습관과 기본이 쌓이면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은 성장과 보람의 계기가 된다.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는 일상을 거뜬히 살아내는 힘은 바로 앞에 펼쳐질 기대와 설렘의 시간들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일산 킨텍스에서 4일간 (11/30~12/3) 체험 행사를 한다. 주제는 ‘2023 늘봄학교, 교육기부 박람회’이다. 충북 교육청 대표로 참여한다.


행사참여를 위해 농장과 집에서 미리 준비하고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올 한 해 진행했던 여러 사업들의 서류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꼼꼼하고 깔끔하게.

컴맹이지만 편집과 디자인 전문가인 아내와 컴도사인 아들이 있다. 막힘이 없다. 든든하다.


겨울철 난방은 땔감을 원료로 하는 화목보일러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가족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일러 관리방법을 세심하게 일러준다. 기계톱으로 맞춤하게 참나무들을 잘라 놓고 정리해 놓는다. 농촌은 다양한 연료로 난방을 하는데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 화목보일러가 제일 따뜻하다.


농장을 운영하는 14년 동안 가장 오래 자리를 비운게 이틀이다. 매일 모이를 먹고 알을 낳는 닭을 키우는 농부의 숙명이다. 택배를 이용한 당일생산, 당일 판매의 원칙도 월~금요일까지는 불변이다.

4일간 공백의 모든 일정은 아내와 아들이 채운다. 일머리가 뛰어난 아내와 한 번 알려주면 척척 알아서 해내는 아들이 있어 걱정은 없다.

가장 중요한 닭 모이는 4일분을 만들어 놓았다.

겨울이라 다행이다.


행사에 필요한 준비물과 자료는 아내와 꼼꼼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출발!

새벽 5시 30분, 새벽 공기는 차가워도  미리 시동을 켜 놓은 차 안은 따뜻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새벽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가 흐르는 시간이다.  


어둑한 고속도로를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 이른 시간, 양방향을 질주하는 차의 70%는 화물차다. 무언가를 가득 싣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쉴 새 없이 달린다. 모두가 고마운 분들이다. 늘 안전운행을 기원한다.

 

운전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졸음운전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과속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운전석만 앉으면 저절로 찾아드는 나른함과 졸음!

몇 해전 고속도로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졸음운전사고를 경험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불쑥불쑥 졸음이 밀려온다. 바짝 긴장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중간에 음성휴게소에 들렀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여는 곳이 많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게 있어서 주문을 할려는데 아직 오픈전이다. 옆 매장 아주머니께 선택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냐고 여쭸더니 본인이 해 보시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자동주문 메뉴에 뜨지 않아 먹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오히려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신다. 괜히 더 죄송했다. 아주머니께서 일하시는 매장의 ‘인삼설렁탕’을 주문했다. 음식을 내주시면서도 계속 원하는 걸 못해줘서 미안하다 하신다. 진한 국물과 인삼 한뿌리, 적당히 들어간 부드러운 소고기에 따뜻한 마음까지 더해진 설렁탕은 최고의 맛이었다. 

든든하게 먹고 나오며 바라본 이른 아침의 하늘엔 밤새 떠 있던 달의 기운이 사위어 가고 있었다.


행사 시작에 늦지 않기 위해 충분한 여유를 두고 출발했는데 변수가 발생했다. 외곽순환도로 송추 IC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사고가 난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첨단 기능을 발휘하여 정확하고 냉정하게 늦어지는 도착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고속도로나 고속 국도는 빨리 갈 수 있으나 예측 못 할 변수로 가장 느리게 가는 길이 된다. 도로 사정으로 약속에 늦는 건 어떤 변명이나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기다리시던 담당 장학사님이 어디쯤이냐고 전화를 주셨다. 미리 도착해서 준비를 완료하고 느긋하게 시작하려던 계획은 어긋났지만 첫날의 출발은 기대와 설렘, 그 자체다.



4일간의 박람회에서 만나게 될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면 마음 가득 충만함이 밀려온다. 어떤 사연과 시간들이 흘러 흘러 이곳으로 찾아들지 생각만으로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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