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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Nov 04. 2023

서울 나들이

어디가 특별한가?

서울에 갔다. 매주 가는 일정인데, 그동안 바빠서 못 간 아내를 따라나섰다. 시골로 내려온 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잠깐씩 들렀던 서울. 나들이 삼아 떠나는 오랜만의 서울행에 마음이 설렜다. 즉흥적 일정의 짜릿함과 기대가 일상의 잔잔한 행복을 안겨 주었다.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시내로 나가던 버스도 드문 드문 다니던 시절. 시내 구경하기도 힘든 시골 촌놈이 서울에 간다는 건, 지금으로 보면 해외여행 가는 거보다 더 힘들고 까마득했다. 그런 서울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아이는 말투부터가 달랐다. 친구들 앞에서 서울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어색했지만 부러웠고 괜히 따라 하기도 했다. 물론 어설픈 서울말씨는 며칠 못 가 원어민의 거침없는 토착언어 앞에 사라졌지만.


서울엔 큰아버지와 고모가 살고 계셨다. 서울이라는 미지의 도시에 친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으스대던 초등학교 때, 동생과 함께 서울구경을 가게 되었다.

순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열세 시간을 달려 아침에 도착하는, 거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듯한 여정이었다. 기차 안에서 들려오는 홍익회 아저씨의 ‘오징어~’ ‘땅콩!’ 소리는 들을수록 반갑고 구수했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기차는 논산역을 지나지 못했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하다 깨어나 보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함이 엄습해 오던 찰나 발밑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의자 밑을 보니 동생이 바닥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가운데 팔걸이도 없고 뒤로 젖힐 수도  없는 평평한 의자의 아래 공간은 넓었다. 의자 위에서 자다가 밑으로 떨어졌는데도 모르고 잠든 동생이 안쓰러우면서도 우스웠다.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아이들에겐 고단하고 긴 여정이었다.


두 번째 서울 나들이때 큰어머니를 따라 사촌 동생과 백화점에 갔다. 70년대 국내 최대백화점은 명동의 ‘미도파’였다. 1층에 들어선 순간 눈에 보이는 광경은 촌놈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내부는 화려하고 웅장했다. 가장 크게 놀란 건 움직이는 계단이었다. 사람이 올라타면 계단이 저절로 움직여 위층으로 올려주는 신기한 문명의 이기 앞에 쉽게 발을 내딛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 계단에 휘청이며 발을 얹었다. 손잡이를 양손으로 꽉 붙잡고 옆으로 섰다.

그때부터 움직이는 계단은 놀이동산의 놀이기구 이상이었다. 큰어머니께서 쇼핑을 하시는 동안 계속해서 ‘에스컬레이터’만 탔다. 오르락내리락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에 가면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며 자랑할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함께 실었다.

시골 촌놈들에게 서울은 미지의 세계였고, 서울 사람들은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차만 타면 자는 습관이 있다. 이번 서울 여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갈 생각이었으나 버스에 타자마자 졸음이 몰려와 비몽사몽이었다. 가끔 아내에게 미안해 뭐라 중얼거리면 신경 쓰지 말고 주무시라 눈짓하며 토닥인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 센트럴시티도 많이 변했다. 최근 자주 오갔던 아내가 가이드였다. 구석구석 훤히 꿰뚫고 안내했다. 와~와~를 연발하며 눈부신 도시의 변신에 놀랐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한 바퀴 돌고 지하철을 타고 인사동에 갔다. 지하로 이동하는 거침없는 교통수단이 어색했다. 모두 핸드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이 없고 무표정이었다. 거의 두 시간 만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제일 좋아했던 곳이 종로와 인사동, 북촌이었다. 인사동도 많이 달라졌다. 정비되고 정리되어 안정되고 여유로웠다. 골목 양쪽과 안쪽들의 눈에 띄는 간판들을 놓치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모습과 언어와 목적으로 북적됐다. 골목에 사람이 많다는 것에 신기해하다니 영락없는 시골 촌놈이다.


아내가 너무 촌티 내지 말하고 눈치 준다. 잠시 일을 멈추고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마냥 좋았다. 낯익은 인사동의 간판들은 시골 동네를 지키는 당산나무처럼 든든하고 반가웠다. 아내가 방문하는 곳은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 세 시간 정도의 일정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새로 조성된 공원을 거닐다 벤치에 앉았다. 공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글도 쓰고, 책을 보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에 깜빡 졸았다. 민망해 주위를 둘러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앉을자리를 찾고 계셨다. 주섬 주섬 일어나 자리를 내어 드리니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신다. 괜히 민망했다. 골목으로 조금 내려오니 아담한 한옥 카페가 보였다. 간판에 ‘국산 팥을 직접 삶아 만든 수제 팥빙수’라고 씌어 있다. 시공을 초월해 어디를 가더라고 반드시 문을 열고 들어 가게 만드는 유혹의 메뉴판이다. 몇 년 전부터 알게 된 절대 지존, 조선 제일의 팥빙수 맛집과 비교해서 대적할 수 있을까? 팥빙수를 기다리는 시간은 기대와 비움의 시간이다. 묵직한 유기그릇에 담겨 나온 팥빙수. 팥은 맛있었으나 빙수와의 조화는 약간 어색했다. 가격은 비교 불가.

팥빙수를 먹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서울 북촌의 한 카페라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일을 마치고 나온 아내를 만나 가을이 깊어 가는 북촌의 골목길을 내려왔다.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예매해 둔 버스 시간이 있어 올라왔을 때 보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둠 속을 달리는 버스 안은 도시의 불빛이 스며들어 네온사인처럼 흔들렸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엔 지하도가 없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골목은 늘 한산하고 사람들은 분주하지 않다. 차들은 막히지 않지만 빠르지도 않다. 읍내는 차로 5분이면 한 바퀴 거뜬하다. 아직 오래된 정미소가 읍내 한 곳에 남아 있다. 추억의 영화 세트장이 될만한 거리는 점점 사라져 가도 시간과 속도는 아직 더디 가는 곳이다. 작은 읍내를 벗어나면 산과 들과 나무와 옹기종기 자리한 마을들이 펼쳐진다. 보이는 것의 대부분이다. 냇가는 넓지 않고 물은 차분하게 흐른다. 공기는 맑고 주변은 온통 단풍의 절정이다.


해가 지면 도로엔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읍내도 화려한 불빛을 일찍 거두고 가게들도 서둘러 문을 닫는다.  시골에서는 해가 지기 전 일을 끝낸다. 일찍 저녁을 먹고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마을은 어둠과 동시에 정적에 잠긴다. 가끔 멀리서 괴상한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리면 귀 밝고 눈치 없는 견공들만 짖어댄다. 들리는 소리들은 깊은 밤, 아득히 멀어져 간다.


특별할 것 없는 서울 나들이라 할 수 있지만, 특별한 도시 서울은 가끔 다녀와야 좋은 곳이 되었다.

농촌에 살고 있어 서울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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