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낙하산 직원 vs 진상손님

by DAN

나의 첫 직장은 편의점. 사장님은 우리 엄마였다. 다른 직원보다 두배로 혼나고, 직원교육도 담당했으며, 당시에는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등 뭔 놈의 데이 때는 가게 앞에서 호객행위도 담당했다. 하지만 엄마가 사장님이라는 이 뒷배는 나의 어깨를 하늘로 치솟게 했다. 낙하산은 두려울 게 없었다.


편의점은 업무강도가 약한 편이었지만 연령대도 다양하고, 진상도 다양했다. 나는 다양한 진상에 따라 배스킨라빈스 31처럼 맞춤식 복수를 강행했다.


제일 기억나는 첫 번째 진상.

갑과자를 다 까서 봉지에 넣어달라고 말하며, 콘돔을 계산대에 집어던졌다. 다시 물어봤지만 갑과자를 까서 넣으라는 이야기가 맞았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돈을 던져도 열받는데 콘돔을 집어던져? 나는 갑과자의 상자를 먼저 까고, 콘돔 상자 또한 다 깠다. 콘돔을 한 장 한 장 뜯어 과자와 콘돔이 봉지 안에서 골고루 비빔밥처럼 섞일 수 있도록 탈탈 털어 그녀의 손목에 봉지를 걸어주었다. 세모였던 그녀의 눈이 콘돔을 뜯을 때 동그랗게 변했으며, 아무 말 없이 쥐어진 봉지를 들고나갔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나는 꽤 상냥하고 상큼하게 마무리 멘트를 외쳤다. 속으로는 콘돔봉지가 찢어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지만.


두 번째 진상, 자칭 아빠 선배.

우리 아빠의 선배라고 본인을 지칭하던 동네 한량 아저씨. 당시, 가게 위치는 아빠가 어릴 때 살던 동네였다. 아빠의 친구나 지인들이 꽤 자주 오셨다. 자칭 아빠의 선배인 한량 아저씨는 항상 취해 있어 반듯하게 걸어 들어온 적이 없었다. 사건을 일으켰던 그날도 잔뜩 취해있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비틀비틀 편의점에 들어와서는 술을 꺼내오며 우리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이 새끼 어디 있냐!”라고 소리 질렀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우리 아빠한테 이 새끼? 참을 수 없어서 “꺼져 이 **새끼야!!!! 너한테 아무것도 안 팔아!!!!”라고 외치며 긴급호출버튼을 눌렀다.

(계산대 아래에는 긴급호출버튼이 있는데, 호출버튼을 누르면 경찰서에서 가게로 전화가 즉시 걸려옴과 동시에 근처 지구대에서 출동을 한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던 단골손님은 테이블에 앉아 후후 불던 라면을 입에 넣다 뱉었고, 선배라고 지칭하던 후레자식은 다시 말해보라며 게거품을 물었다. 나는 너 같은 개호로자식한테 아무것도 팔 수 없다며 네가 여길 다시 오면 소금 안에 너를 묻어버리겠노라고 소금산소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 사이 경찰들이 와서 이 말을 듣고는 그가 아닌 나를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나는 집에 가서 꺼이꺼이 울며 아빠에게 “그 새끼가 아빠보고 새끼라고 하잖아! ”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딱히 아빠가 위로해주진 않았다. 위로해 주기에는 나는 꽤 거칠게 대응했고, 아빠는 나의 응대 방식에 적잖이 당황해서 "네가 진짜로 그렇게 했다고?"라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그 아저씨의 딸이 엄마를 찾아와 사과를 전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아저씨를 용서할 수 없어서 이후에도 찾아올 때마다 도끼눈을 뜨고 응대했다.


세 번째, 수영 강사.

복수는 아니고, 당황했던 일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한 가지 취미가 있었는데 단골손님의 담배를 외워서 손님이 들어옴과 동시에 담배를 건넸다. 경지에 이르렀을 때는 구매하는 담뱃갑 수 까지 맞췄다. 그래서, 동네 아저씨들은 이쁜이나 공주라고 부르며 나를 보면 헐레벌떡 달려와 담배를 사고 맞추면 본인이 더 신나서 음료수도 사주셨다. 숙취가 너무 심한 날도 버릇처럼 단골손님의 담배를 챙겼는데, 죽을 것 같은 내 표정을 보시고는 약국에 가서 숙취해소에 좋은 약을 사다 주셨었다.

진상 수영 강사의 담배는 진작 외워뒀었고, 꼭 담배를 두 갑씩 사갔다. 이 사람을 진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말투나 행동이 지저분했다. 건들거리는 스타일이었는데 꼭 가게를 들어오면 사람을 위아래로 훑고, 물건을 안 사고 자주 5만 원권을 1만 원과 1천 원짜리로 바꾸어 갔다. 바빴던 어느 날은 환전할 돈이 부족하여 안된다고 하니 200원짜리 막대사탕을 나한테 던지는 게 아닌가. 여간 싸가지가 아니었다. 나의 작은 복수로 그에게는 꼭 주문을 하면 담배를 내어줬었다. 한날 너무 바빠 무의식 중에 물건을 먼저 내놓았더니 기뻐하며 다음날부터 친한 척을 하며 내 안부를 물어댔다. 어이가 없었지만 내가 가게에서 일하는동안 친근함을 계속 표현하니 그냥 저냥 넘어갔었다.


네 번째, 웃음을 팔라는 아저씨.

어리바리하다가 복수를 실패한 적도 많았다. 가게에서 일하며 한 가지 두려워했던 것은 손님이 줄 서 있는 것이었다. 줄을 서있으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고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계산을 하며 "왜 안 웃어!"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나는 대꾸할 만큼의 정신도 없었고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니 "싸가지 없이 계산하면서 안 웃고 말이야"라고 말했고, 놀란 나는 눈물이 났다. 뒤에 계신 아주머니가 "아니 계산하는데 왜 웃어야 돼 미친 영감탱이야! 어디서 화풀이를 해!"하고 소리쳤는데 아저씨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나가버렸다. 너무 화가 난 나는 복수의 칼을 갈며 그 아저씨를 기다렸지만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 나는 손님이 없으면 허공에 대고 말했다. "계산해 주는데 왜 안 웃어!!! 싸가지없는 놈아!!!!"


다섯 번째, 돈 던지는 사람은 말도 짧은 사람.

희한하게 돈을 던지는 진상은 말도 짧다. 예를 들어 "얼마"라든가, 담배를 말할 때도 "레종블루" 아주 간단명료했다. 꼭 말을 하면서 돈이나 카드를 던져댔으며 "빨리빨리 시간 없어" 이런류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뒷배가 든든한 나는 나한테 돈을 던지면 똑같이 던졌다. 지폐를 던지면 동전을 던져줬고, 거스름돈이 없으면 물건을 던져줬다. "얼마"라고 물으면 "삼천팔백 원" 이렇게 대답하고, "빨리빨리 시간 없어"라고 말하면 "응"이라고 말했다. 보통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별말은 없었다. 끝까지 반말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존댓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말을 끝까지 하는 사람한테는 도저히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다시 존댓말을 하는 사람한테는 '안녕히 가세요' 정도는 해주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동생도 가게를 도울 때 나랑 똑같이 했다고 한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더니 "반말하면 나도 '응' 이렇게 했는데? 돈 던지면 나도 던짐"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걸 닮을 줄은 몰랐는데 내 동생이 맞았다. 조금 흐뭇하기도 했다.


여섯 번째, 일탈하는 미성년자들.

이들의 공통점은 가게를 들어오기 전에 나를 요목조목 뜯어본다. 한참 살펴보다 들어와서는 담배나 술을 사려고 했다.

한 애는 계산대에 맥주 피쳐 여러 병, 소주 여러 병을 잔뜩 올려놓았다. 올려놓을 때마다 확신하듯 나와 눈을 마주치며 술을 날랐다. 나는 무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다 올려둔 것을 확인하고 "나가"라고 말했다. 그 애는 허탈하다는 듯이 점잖게 나갔다.

집요한 스타일의 애들은 억울하다는 듯 꼭 이런 말을 한다. "저 사장님이랑 친해요. 맨날 여기서 산다니까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제가 더 친해요."라고 대답했다. 보통 이러면 포기하는데 "사장님한테 혼날걸요? 저 진짜 매일 온다니까요?"라고 말하는 애들도 있다. 나는 그냥 한숨을 쉬며 "하... 내 엄만데 나보다 친해요?????" 하면 "허..."하고 나갔다.

소문이 퍼질 법도 한데 애들은 끝없이 왔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한 나는 "너보다 한 살 많은 사람의 띠는 뭐냐" "한자를 써보아라" "별자리를 대보아라" 등등 미션을 해댔다. 아이들의 한숨이 점점 깊어졌다.


편의점에 진상손님만 있었냐고? 그렇진 않았다. 옆 가게인 수선집 아주머니는 비가 오면 전을 부쳐서 가져다주셨다. 파전은 꽤나 맛있었고, 나는 뭐라도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에 막걸리를 두어 병 사서 가져다 드렸었다. 전을 부쳐 주시는 날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선집에 모여서 다 같이 반주를 즐기셨는데 막걸리를 사다 드리면 다 같이 박수도 쳐주셨었다.

수영장에 꼬맹이들도 많이 왔었는데 "아줌마 라면 비벼주세요"라고 얘기하면 "이모라고 해야 라면 해줄 거야"라고 대답하고 애들을 조련했다. 5살에서 8살까지가 보통 나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다 해주고 "고맙습니다 안 해???" 하면 "고맙습니다..."라고 듣는 게 또 하나의 취미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한테는 내가 진상이었겠다.

다른 일도 꽤 많았는데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단골손님이었던 분들은 다들 잘 지내고 계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엄마가게에서 일한 4년 동안 여러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내가 얻은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겁이 없어진 것 같다. 요즘 대화할 때 나오는 능청스러운 말들도 그때 배운 게 아닌가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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