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못하는 소통왕 3

by DAN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엄마와 단 둘이 보홀로 떠났다. 3박 4일의 일정은 2주 내내 인터넷을 뒤져서 완성했다. 보홀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초콜릿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여기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어?" 엄마의 질문이었다. 엄마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고, 다녔던 여행들은 모두 패키지여행이었다. 엄마는 딸을 가이드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 그런 거 몰라. 이거 봉우리 많은 거 봐봐. 빨리 사진 찍자." 겨우겨우 넘어갔다.


리조트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리조트직원과 소통이 안 되는 상태여서 매우 곤란했다. 다른 리조트 직원은 우리의 짐을 맡아주려고 받으려 했다. 여기서 또 엄마는 "아니 이 사람이 내 캐리어 가져간 다음에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빨리 말 좀 해봐 봐. 저 사람한테 말해봐 봐 이거 왜 가져가냐고. 돈 내야 되냐고!"

나는 아직 직원한테 얼리체크인을 할 수 있냐고 묻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직원은 내가 말도 못 알아듣는데 엄마가 자꾸 한국말로 이야기하니 "예뻐요. 뷰티풀."하고 비아냥? 한숨?을 쉬었다. 울고 싶었다.

여차저차 짐정리를 끝내고 근심이 늘었다. 나는 통역도 못하는데 엄마는 나만 믿고 있고, 엄마와 외국인의 동시통역의 상황. 이걸 3박 4일간 해야 한다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튿날은 호핑투어를 예약해 뒀다. 돌고래를 보고, 스노클링을 하는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한데 모여 트럭에 탔다. 트럭에는 여러 팀이 함께 있었고, 배가 있는 선착장까지 함께 간다고 했다.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한다고? 눈치껏 알아들으면 되겠지. 선착장에 내렸고, 우리만 빼고 다른 배로 이동을 했다. 그렇다. 나는 프라이빗 단독 투어를 예약했었다.


엄마는 무서워했다. 나와 엄마. 네 명의 필리핀 아저씨들. 6명이서 한 배를 탔다. 엄마는 말했다. "왜 우리만 여기타? 너는 배 한 척을 빌린 거야?" 나도 몰랐다. 내가 배 한 척을 빌린 지. 그러나 엄마만의 가이드는 의연해야 했다. "응. 우리 둘만 여기 타는 거야." 배는 자꾸만 바다의 끝으로 가려했다. 나는 너무 긴장했고, 엄마는 내 옆에 꼭 붙어있었다. 다른 배들도 줄지어 바다로 향했고, 돌고래가 떼를 지어 나타났다. 돌고래 보러 온 거였구나. 엄마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돌고래 떼를 봤고, 필리핀 아저씨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빨리 돌고래를 보라고 가리켰다.


돌고래를 보고 나서 아저씨들이 우리를 잠시 해변가에 내려줬다. 나는 우리를 여기 버리고 가는 건 아닌가 몹시 걱정했지만 그들은 천천히 보고 다시 여기로 돌아오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빠르게 해변가를 거닐고 다시 배를 탔다. 우리를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우리를 태우고 깊은 바다로 이동했다. 무서웠지만 지켜봤다. 그들은 우리에게 잠수경을 들고 뭐라 뭐라 말했다. 깊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려는 눈치였다. 나는 그들의 말을 눈치껏 듣고 최대한 따랐고, 엄마는 물을 무서워했다. 엄마는 나에게 소리쳤다.

"아니 나 여기 무섭다고!! 발 닿는 대로 가자고 해줘!!" 나는 손짓 발짓하며 "딥! 딥! 마미 스캐얼드! 플리즈!" 용케 알아들은 한 아저씨가 얕은데로 가면 물고기가 많이 없다고, 물고기 안 봐도 괜찮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다 괜찮다고 제발 그녀가 원하는 데로 해달라고 했고, 그들은 엄마를 데리고 얕은 물에서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쳐줬다. 그들은 계속 얕은 곳에서 놀아도 되냐며 재차 물었다. 엄마는 웃으면서 "너무 좋아!"라며 물놀이를 즐겼다. 그들은 웃으며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수영을 가르쳐준 뒤 다시 깊은 물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물고기를 보여줬다.


그들은 우리가 배에서 내릴 때까지 친절했고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팁을 많이 줘야 되는 상황이야?" "엄마 나도 몰라. 그냥 웃어줘." 우리는 소액의 팁을 쥐어주고, 웃으며 인사했다.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이때의 일을 겁 없는 나의 딸이 배 한 척을 빌렸으며, 내 딸은 배포가 크다고 말하고 다닌다.

배포가 큰 엄마의 딸은 야밤에 엄마를 끌고 나와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엄마는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딸이 하자는 대로 했다. 변비가 없는 딸이 필리핀에 와서 큰일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게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엄마를 지켜야 하고, 안내해야 하는 대혼란 속에서 빨리 맥주를 먹고 싶었던 나는 해변가 펍에 앉자마자 "투 맥주! 플리즈!"라고 외쳤다. 엄마는 펍에서 제일 크게 깔깔 웃었다. 야속했지만 다시

"투비어.. 플리즈.."라고 정정 후 맥주를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보홀에서의 3박 4일 동안 매일 저녁 마사지, 호핑투어, 관광지 관람 등 빠듯하게 짜서 갔지만 정작 엄마가 좋아했던 건 매일 저녁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요즘 성격의 지표로 활용되는 mbti의 p성향이 강해 흘러가는 대로 지내는 여행을 지향했으며, 호기심이 많고, 여유로웠다. 반면, 나는 완벽한 계획을 추구해 혼자 여행을 계획할 때 구글 로드뷰로 몇 번이나 혼자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엑셀에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다.


엄마는 나의 이런 지독함을 따라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단순하게 해결해 나갔다. 출발할 때 비행기 안에서 전화기에 유심칩을 갈아 끼워야 하는데 하나를 떨어뜨렸다. 나는 5시간 내내 불안했으나 엄마는 차분하게 "내려서 다시 해보자."라고 말 한 뒤, 초콜릿 힐에 갈 때 기사 아저씨께 도움을 요청했다.


또, 들렀던 마사지샵 중 한국인이 주인이었던 곳에서 엄마는 여기는 맛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음식 추천을 받아 태국음식점으로 나를 끌고 갔다. 태국음식은 둘 다 처음이었는데, 옆에 한국인 언니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는 언니들에게 추천받아 보홀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를 했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되자마자 엄마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엄마의 눈치로 외국인을 상대하는 것을 보고 배운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고, 돌발상황에도 꽤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엄마가 나랑 비슷한 또래로 태어났다면 전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지 않았을까? 똑똑하고, 눈치도 빠른 엄마라면 영어도 금방 익혀 어디서든 잘 적응했을 것 같다. 이 여행을 통해 엄마의 여유로운 태도가 더 닮고 싶어 졌다.

이전까지는 완벽한 계획이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흘러가는 여행의 즐거움도 깨닫게 되었으며, 엄마에게 배운 자신감과 눈치로 여행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배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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