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못하는 소통왕 2

by DAN

몇 년이 지나고 나는 혼자 마카오로 3박 4일간 여행을 떠났다. 도착한 첫날은 별일 없이 지나갔었고, 둘째 날의 첫 스케줄부터 재밌는 일이 생겼다.


둘째 날, 첫 번째 일정은 베네치아 호텔에서 베네시아 운하의 곤돌라타기였는데, 곤돌라를 타자마자 직원이 강남스타일을 불렀다. 운하에 운행하는 곤돌라는 우리 배 하나. 그와 나 둘뿐. 나는 그의 노랫소리에 맞춰서 열심히 상체로 말춤을 췄다. 이대로 끝나길 바랐는데, 운하가 너무 길었다. 그는 아리랑을 불렀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체육대회 연습했던 느낌을 되살려서 부채 없는 부채춤을 한껏 췄다. 사실 팁을 줄 돈이 없었다. 그와 나는 같이 공연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열심히 췄다. 바라보던 한국인 중년여성분들이 사진을 찍었다. 에어드롭이라도 해주고 가셨으면 좋았으련만. 그냥 가셨다. 나는 그날 체험 삶의 현장의 곤돌라직원 체험을 했다고 혼자 위로한다.


곤돌라를 타고 여러 군데에서 안 되는 영어를 최대한 사용해 쇼핑을 했다. 쇼핑 후, 더 하우스 오브 댄싱워터 공연을 관람하러 이동했다. 공연장이 위치한 호텔로 가려고 셔틀버스 탑승장으로 갔다. 탑승장에는 셔틀버스 스탭? 인 서양인 한분이 계셨는데 혼잡한 틈을 타 그를 쳐다보며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대뜸 내 눈을 마주치더니 "사쉽구!" 이런 식으로 숫자를 말했다. 황당했지만? 그의 말대로 숫자홈을 찾아갔다. 너무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진짜 황당했던 건 그가 말한 곳에서 셔틀버스를 탔고, 걱정할 틈도 없이 내가 원하는 호텔에서 내려줬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마음을 읽나? 아니면 너무 이곳이 단조로워서 당연히 갈 곳이라고 생각했나? 아무튼 공연장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한 가족이 앉았다. 3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 엄마, 아빠. 아기가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는 아이와 공연 전까지 놀아줬는데 아이 엄마가 번역기를 돌리더니 아이에게 "언니"를 가르쳤다. 쟤랑 나랑 25살 이상 차이가 나는데 '언니'의 호칭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노노노노노! 이모!"라고 정정해 줬지만 그녀는"이? 모?" 하더니 다시 아이에게 "언니"를 가르쳤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아이는 공연에 집중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어서 공연 내내 아이의 손을 잡거나 쓰다듬으면서 같이 관람했다. 헤어질 때는 너무 아쉬워서 아이를 꼭 끌어안아주고 헤어졌다.

아이랑 헤어지고 나서 이상하게 아이들이 더 말을 걸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여행 와있는 것 같았는데, 중국인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나한테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워쓰 한궈런" 하나뿐이었다. 그들의 모든 질문에 "워쓰 한궈런"이라고 답했다. 곰인형 누르면 나오는 멘트처럼. 어른들은 그러면 좀 지나갔는데. 아이들은 집요하게 나한테 와서 계속 말을 걸었다. 할 줄 아는 말은 없는데 대답이 너무 하고 싶어서 속상했다.


셋째 날이 되었고 스튜디오시티에서 놀이기구 같은 걸 탔다.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은 영어를 좀 하는 분이었는데 나한테 중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이, 얼, 산, 쓰, 고, 로쿠..." 그렇다. 1-4까지는 중국어를 5부터는 긴장해서 일어를 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녀의 눈치를 보며 놀이기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빠져나와 호텔에서 조금 쉴 참이었다. 호텔을 가는 길을 찾는데 아무리 봐도 카지노를 지나가야 했다. 나는 카지노가 무서웠고,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몰랐다. 가드 분에게 "익스큐스미, 쏘리. 플리즈 암 저스트 고잉 마이 호텔. 스트레이트!" 그는 "여권"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못 알아듣고 다시 간곡하게 부탁하려고 두 손을 모았다. 그는 손으로 네모를 만들며 "패스폴트. 여. 권." 손을 모아 여권을 공손히 보여드리고 가방을 안고 호텔로 달려갔다. 아니 근데 여기는 내 얼굴만 보고 한국인인걸 안다고? 이 정도면 한국어로 소통가능한 거 아니야?


아무튼 호텔에서 조금 쉬고 나와서 야경을 관람했다. 윈 팰리스 음악분수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이 나와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윈팰리스에서 내가 묵는 호텔까지는 셔틀의 끝에서 끝이었는데, 셔틀을 도무지 못 찾겠어서 난감했다. 나는 로비에 있는 스탭에게 더듬더듬 말을 걸었다. 셔틀버스 어디 있냐고. 나는 호텔로 가야 된다고. 그는 셔틀은 이제 끝났고, 걸어가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나는 대뜸 그에게 "아이 캔 두잇 애니띵!"이라고 외쳤고, 그는 나의 코치님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보며 응원해 줬다. 나는 3,40분을 걸어 호텔에 도착했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길은 넓어 조금 무서웠지만 이때 봤던 호텔들의 반짝임과 상쾌한 바람은 잊을 수가 없다.


3박 4일간의 마카오 일정을 마치고 나는 자신이 더욱 생겼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에게 엄청 친절하구나. 이 정도라면 해외여행은 진짜 어려운 게 아니구나. 엄마랑 둘이 해외여행 가능하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마음가짐은 너무 큰 시련을 가져다줬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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