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피행위 등에 관여한 행위자의 형사책임을 공부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책상 앞 창문을 통해 노란 햇살이 기웃거리고 있다.
뽀모로도 구글 확장 프로그램이 2시간 14분 동안 집중했다고 알려주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내가 사는 원룸 건물 왼편으로 낮달이 떠 있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저녁이면 내 머리 위로, 늦은 밤이면 오른편으로 뜨는 그 달이었다. 오후 4시 24분. 왼쪽에서 오른쪽까지의 오늘이 남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책상 앞에 있는 창문을 주로 열어놓고 공부하거나 생활한다. 창문 앞에 책상을 둔 것은 답답한 공기에 쉽게 머리가 멍해지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동네이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두어도 공부에 방해가 없다.
원룸 건물 맞은편에는 아파트가 있다. 어느 날인가 아침에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ㅇㅇ야, 사랑해"라고 외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유치원에 가는 아이를 배웅하는 목소리였으리라.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귀동냥 할 수 있는 방이라니, 별 생각 없이 계약했던 것에 비해 꽤 잘 구한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빨래가 다 되었다고 세탁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난다. 꺼내어보니 너무 축축해서 추가 탈수를 한다.
공부와 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원룸에 올해 8월에 이사온 뒤로, 나는 꽤나 조용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공부하거나 자거나 밥을 먹고, 쉴 때는 책장 앞에 서서 괜히 이런저런 책들을 꺼내보거나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거나 한다.
어제는 갖고 있었지만 더이상 소장하고 싶지 않거나 소장할 필요가 없는 책들을 중고 서점에 대량 처분했다.
원룸에 살다보면 자연스레 삶을 간소화하게 된다. 최소한의 것들만 들이게 된다. 그런 조건에서도 조금 사치를 부리는 것들이 있다면 책과 CD를 수집하는 일과 꽃을 사는 일이다.
꽃에 대해 말하자면, 꽤 오래전부터 한 줄기씩 꽃을 사다 꽃병에 꽂고 있다. 꽃꽂이는 잘 알지도 못하고, 해보고 싶은 생각도 지금은 그다지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꽃을 적당히 사서 꽃병에 꽂고, 그 꽃이 시들어가거나 이제 슬슬 다른 꽃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동네 꽃집에 가는 정도다. 꽃집 유리창 안으로 어떤 꽃들이 있나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꽃이 보이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상하게 꽃집에 들어갈 때에는 행동거지가 조심스럽게 된다. 아마 내 거동이 주변의 연약한 꽃들을 훼손할 것만 같아서일것이다.
무슨 꽃을 찾냐는 사장님 말에 '꽃병에 꽂을 거에요'하고 말하면 사장님이 적당한 꽃들을 이것저것 추천해주신다. 보통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꽃들이 가장 싱싱하다. 마음에 드는 꽃을 구매해서 돌아온다. 선물할 게 아니라 꽃병에 꽂을 것임을 아시므로 사장님은 간소하게 포장을 해 준다. 나는 그 간소한 포장이 오히려 꽃을 부각시키는 거 같아 마음에 들어하면서 방에 돌아온다. 적당한 길이로 줄기를 자르고, 꽃병에 새 물을 담아 꽃을 꽂은 뒤 책상 한켠에 둔다. 그러면 공부와 생활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삶에서 살짝 일탈한 기분이 들어 좋다.
문득 꽂아두었던 꽃을 살펴보니 퍽 시들시들하다. 이따가 새 꽃을 사러 가야겠다. "ㅇㅇ야, 사랑해"라고 어린 아이의 등원길을 배웅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남은 오늘 하루가 나에게 상냥한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 꽃을 사러 가야겠다.